화려한 조명과 뜨거운 관심이 쏠리는 아이스링크와 달리 루지와 바이애슬론이라는 외롭고 거친 트랙 위에서 묵묵히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두 선수가 있다.
13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올림픽 꿈을 이룬 루지의 정혜선(31·강원도청)과 제2의 조국 대한민국에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안기고 생애 마지막 올림픽을 준비하는 바이애슬론의 예카테리나 압바꾸모바(36·전남체육회)가 그 주인공이다.
메달권과는 거리가 먼 비인기 종목이지만, 이들의 사전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없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이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뜨거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13년 도전 첫 올림픽 출전 정혜선
루지는 썰매에 누운 채 1000∼1500m의 얼음 트랙을 시속 150㎞를 넘나드는 속도로 내려오는 종목이다. 엎드려 타는 스켈레톤과 달리 하늘을 보고 누워 타는데, 시야 확보가 어렵고 오직 발끝의 감각과 어깨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조종해야 하기에 ‘썰매 종목 중 가장 예민한 스포츠’로 불린다.
이 거친 세계에 정혜선이 발을 들인 것은 13년 전이다. 고교 시절 역도 선수였던 그는 우연한 권유로 썰매를 잡았다. 2014년 국가대표가 된 후 10년 넘게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올림픽 무대는 유독 그에게 가혹했다. 2018 평창 대회 직전에는 불의의 어깨 부상으로 도전을 멈춰야 했고, 2022 베이징 대회 역시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정혜선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1월3일, 국제루지연맹(FIL)으로부터 여자 1인승 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졌다는 통보를 받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수 끝에 얻은 기회라 더 소중하다”는 정혜선은 “유럽 강국들과의 격차가 큰 것이 사실이지만, 오직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고 말한다.
정혜선의 강점은 굴곡진 세월이 만들어낸 단단한 근성이다. 훈련 중 썰매가 뒤집혀 어깨가 빠지는 사고를 당하고도 수술을 미룬 채 트랙 위에 섰던 그다. “선전을 펼쳐 루지라는 종목을 국민께 더 알리고 싶다”는 정혜선의 눈빛은 이미 밀라노의 차가운 얼음 위를 정조준하고 있다.
◆세 번째 도전 나선 압바꾸모바
바이애슬론은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소총 사격을 결합한 스포츠다.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스키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사격이라는 상반된 요소가 공존한다. 주행 중 심박수가 분당 180∼200회까지 치솟는 상황에서 호흡을 다잡고 표적을 맞혀야 하기에, 강인한 심장과 평정심 없이는 불가능한 종목이다.
러시아 청소년대표 출신으로 2016년 한국으로 귀화한 압바꾸모바는 한국 바이애슬론의 대들보다. 그는 2018 평창 대회에서 한국 여자 선수 역대 최고 성적인 16위에 올랐고,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 사상 첫 바이애슬론 금메달을 목에 걸며 역사를 새로 썼다.
어느덧 30대 중반, 체력적으로 부침을 겪을 법한 나이지만 압바꾸모바는 여전히 설원 위의 ‘철녀’로 불린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후 애국가를 들으며 “힘든 시간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고향 한국에 메달을 안길 수 있어 기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압바꾸모바는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폐회식에서도 기수로 나서 태극기를 휘날렸다.
이제 압바꾸모바의 세 번째 올림픽인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대회는 그의 마지막 올림픽 도전이다. 현실적으로 올림픽 메달은 쉽지 않은 목표다. 세계 최강인 북유럽과 러시아 출신 선수들의 벽은 높다.
그러나 압바꾸모바는 1%라는 작은 확률을 위해서라도 100%를 쏟아내겠다는 각오로 이번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바이애슬론을 ‘비인기 종목’에서 ‘기대 종목’으로 바꾸고 싶다는 그의 헌신은 한국 동계스포츠계에 소중한 자산이다.
스포츠팬들도 항상 결과에 주목해 왔던 과거와 달리 이젠 종목마다 올림픽 무대에 서기 위해 노력해온 많은 선수의 ‘과정’에도 박수를 보낼 준비가 돼 있다.
설령 시상대에서는 볼 수 없을지라도 13년을 버틴 ‘오기’와 10년째 이어온 ‘진심’은 그 자체로 금메달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