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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1시간 헬스장 가도 소용없다”…당신의 뇌가 쪼그라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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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하루 9시간 ‘의자 감옥’ 생활…수면 시간보다 길어 뇌 건강 적신호
12시간 넘게 앉아 있으면 치매 위험 63% 폭증해…운동으로도 상쇄 ‘불가’
“단순 운동보다 좌식 시간 줄이기가 핵심”…기억 관장 해마 위축 막아야

“퇴근 후에 매일 1시간씩 헬스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거든요. 그런데 자꾸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생각이 안 나고, 업무 파일 이름도 헷갈려요. 운동 부족인가 싶어 강도를 높였는데도 머릿속은 더 안갯속 같아요.”

 

대한민국 성인들이 깨어있는 시간의 60% 이상을 보내는 ‘의자 위’는 이제 건강의 사각지대가 됐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성인들이 깨어있는 시간의 60% 이상을 보내는 ‘의자 위’는 이제 건강의 사각지대가 됐다. 연합뉴스

광화문의 한 IT 기업에서 8년째 근무 중인 정모(38) 씨의 고백입니다. 정 씨는 자칭 ‘운동 마니아’입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저녁마다 런닝머신을 뛰며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살았노라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일과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의자에 ‘박제’된 채 모니터만 응시하는 생활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운동을 했으니 앉아 있던 시간의 해로움은 사라졌을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는 뇌 건강을 망치는 가장 위험한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우리가 무심코 넘긴 ‘앉아 있는 시간’이 어떻게 뇌를 공격하는지 알아봤습니다.

 

◆깨어있는 시간의 60%를 의자 위에서 보낸다

 

현대인의 하루는 ‘앉음’으로 시작해 ‘앉음’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5년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발표한 통계는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5일 질병관리청 ‘2024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의 하루 평균 좌식 시간은 9.1시간이다. 5년 전인 2020년(8.4시간)과 비교해 40분 넘게 늘었다. 특히 정 씨처럼 사무직이 대다수인 30~40대와 취업 준비 등으로 책상 앞에 묶여 있는 20대의 경우 평균 좌식 시간이 10시간을 훌쩍 넘긴다.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7시간 남짓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는 잠자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의자 위에서 보내고 있는 셈이다.

 

◆“운동 많이 해도 소용없다” USC 연구팀의 경고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좌식 시간이 뇌 건강에 치명적인 ‘직격탄’을 날린다는 점이다. 단순히 허리 디스크나 거북목 증후군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와 애리조나대학교 공동 연구팀이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의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는 섬뜩하다. 하루 앉아 있는 시간이 12시간을 넘기는 순간, 치매 발생 위험은 9시간 미만인 그룹에 비해 무려 63%나 폭증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운동의 배신’이다. 많은 직장인이 “주말에 몰아서 등산하면 괜찮겠지”라고 위안 삼지만 연구 결과는 냉정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고강도 신체활동 기준을 충족할 만큼 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이라도, 앉아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길다면 뇌 손상을 막을 수 없었다.

 

◆기억 관장하는 ‘해마’가 위축된다

 

오래 앉아 있을 때 우리 뇌 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 UCLA(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연구팀이 추적 관찰한 결과, 장시간 좌식 생활은 알츠하이머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뇌 영역을 물리적으로 변화시켰다.

 

연구팀이 404명의 뇌 MRI를 분석한 결과,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일수록 기억 형성을 담당하는 ‘해마’ 부위가 쪼그라들어 있었다. 이는 단순한 노화 과정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뇌가 늙고 있다는 증거다.

 

장시간 좌식 생활은 기억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뇌 속 ‘해마’의 부피를 빠르게 감소시킨다. 연합뉴스
장시간 좌식 생활은 기억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뇌 속 ‘해마’의 부피를 빠르게 감소시킨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신경과 교수는 “단순히 헬스장에서 근육을 키우는 것과 뇌의 혈류를 유지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뇌로 가는 혈류량이 줄고 만성 염증이 생기기 쉽다. 퇴근 후 고강도 운동 한 번보다 업무 중 ‘30분마다 2분씩 걷기’가 인지기능 저하를 막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더하기’ 보다 중요한 ‘빼기’의 건강학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결과가 주는 메시지가 명확하다고 입을 모은다. 뇌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 시간을 늘리는 ‘더하기’ 전략보다,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는 ‘빼기’ 전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아무리 비싼 PT를 받아도, 하루의 절반 이상을 꼼짝 않고 앉아 있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 업무 중 50분마다 한 번씩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점심시간에 잠깐이라도 산책을 하는 사소한 습관이 뇌 수축을 막는 방패가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움직임의 조각화’다. 가까운 거리는 걷고, 가능하다면 스탠딩 데스크를 활용해 서서 일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보자. 당신의 뇌는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바로 그 의자 위에서 서서히 메말라가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