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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샌프란시스코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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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JP모건의 헬스케어 콘퍼런스가 성공한 것은 이곳의 따뜻한 날씨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이 매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하는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는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업계 투자 행사다. 지난달 12~15일(현지시간) 취재차 찾은 현장에서 만난 한 참석자는 올해로 44회를 맞은 이 행사의 성공 비결을 뜻밖에도 샌프란시스코의 따뜻한 날씨에서 찾았다.

김희정 산업부 기자
김희정 산업부 기자

JP모건 본사가 있는 뉴욕이나 주요 글로벌 제약사 본거지인 보스턴 등 미국 동부 지역은 같은 시기 영하의 추위와 폭설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JPMHC가 굳이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것은 바이오·헬스케어 밴처캐피털 등 헬스케어 기업이 밀집한 지역이라는 점과 함께, 동부의 혹한을 피하려는 투자자들에게 온화한 기후가 매력적인 조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JPMHC는 회의장 안보다 호텔 로비와 노천카페, 거리에서 이뤄지는 자유로운 네트워킹이 핵심이라고 한다. 춥지 않은 날씨 덕분에 참가자들이 거리로 나와 걷고 야외 테라스에서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대형 호텔이 밀집한 도시 구조 역시 수천 건의 비공식 미팅이 동시에 진행되는 데 힘을 보탠다. 샌프란시스코 호텔들이 나흘간 행사 수익으로 연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채운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온화한 기후가 끌어모은 건은 JPMHC의 투자자들만이 아니었다. 겨울에 바깥에서 자도 생존이 가능한 날씨는 노숙인과 마약 중독자들에게도 매력적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비싼 주거비도 이들에겐 장벽이 되지 않은 이유다. 날씨가 온화하니 도심 거리 곳곳에 잠자리를 펴면 그만이었다.

JPMHC가 열리는 호텔 앞 쇼핑몰이 밀집한 유니온스퀘어에서 조금만 걸어가도 많은 노숙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점령한 텐트촌에는 배설물 악취가 진동했고, 마약에 취해 허리가 꺾인 채 멈춰 선 ‘좀비’들이 행인 사이를 유령처럼 배회했다. 이런 풍경은 오래됐다고 한다. 자연스레 치안 악화와 절도 증가로 샌프란시스코 도심 상권도 무너졌다. 상징과도 같았던 고급 백화점 노드스트롬은 2023년 문을 닫았고, 관광객들에게 금문교를 품은 아름다웠던 도시는 가기 꺼리는 도시로 바뀌었다. 이러한 사회적 진통은 시 재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샌프란시스코 노숙인 지원 주택 부서(HSH)의 2024∼2025 회계연도 확정 예산안에 따르면, 이 기간 노숙인 지원에 투입된 예산은 약 8억4610만달러(약 1조2384억)에 달한다. 시 전체 예산의 약 6%를 차지한다. 따스한 1월의 샌프란시스코는 인류가 꿈꾸는 미래(AI·바이오)와 외면하고 싶은 민낯(노숙·마약)이 불과 한 블록을 사이에 두고 공존하는 기이한 ‘전시장’이 되어버렸다.

JPMHC에서 펼쳐진 화려한 번영의 청사진 뒤로 가난과 약 기운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샌프란시스코만의 예외적 풍경이 아닐 것이다. 양태는 다르지만 세계 도처에서 보기 불편한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혁신과 자본의 속도를 사회가 따라잡지 못할 때, 번영은 언제든 같은 균열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경고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