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학원비에 각종 공과금, 생활비까지….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데 정말 막막하죠. 월급도 끊기고 납품도 끊기고 정상이 아니에요. 당장 이 나이에 재취업도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난 13일 오후 서울 송파구 홈플러스 잠실점. 설 연휴를 앞두고 한창 북적여야 할 시기였지만 매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납품 대란’이 이어졌던 한 달여 전과 비교했을 때보다는 매대가 채워진 모습이었으나 명절 성수기인 시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물량이었다. 생필품의 경우 제일 앞줄만 채워져 있거나 식품 역시 홈플러스 자체브랜드(PB) 상품들로만 채워진 곳이 많았다. 빈 상자를 정리하던 한 직원은 “설 연휴라 그래도 많이 채워졌지만 옛날에 비하면 확실히 절대적인 납품 물량이나 종류가 줄었다”며 “물건이 없으니까 손님이 줄고, 손님이 없으니 물건이 더 주는 악순환인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홈플러스 직원들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구체적인 자금 조달 방법이 없어 청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줄폐점에 이어 ‘최후의 보루’라 여겨지는 임직원 임금 체불까지 현실화되자 정부가 나서달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18일 홈플러스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홈플러스는 전국에 점포 총 123곳을 운영했지만 이달 111곳으로 줄었다. 기업회생 절차가 진행되며 지난해 말부터 일부 부실 점포 정리를 본격화했다. 지난해 12월 원천, 가양, 장림, 울산북구, 일산점이 우선 문을 닫았고 지난달 31일에는 계산, 안산고잔, 시흥, 천안신방, 동촌점을 폐점했다. 이달에도 부산감만, 문화, 울산남구, 전주완산, 화성동탄, 천안, 조치원점을 폐점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잠실점과 인천숭의점도 문을 닫을 예정이다. 홈플러스는 2027년까지 점포를 102개로 줄일 계획이다.
창사 이래 처음 직원들 급여도 밀렸다. 홈플러스는 자금 상황 악화를 이유로 지난해 12월 직원 급여는 분할 지급하고 지난달 급여는 지급을 연기했다. 지난 12일 일부 직원에 지난달 급여의 50%만 우선 지급했지만, 매년 지급됐던 설 상여금은 없었다. 홈플러스는 지난 6일 직원을 상대로 “필수 운영자금의 지급을 미루는 것에 어려움이 있지만 어떻게든 일부 운영자금의 지급을 유예해 1월 급여의 일부라도 지급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회생계획안 동의 지연에 따른 급여 미지급으로 힘들어하는 직원 여러분에게 송구하고 죄송할 따름”이라고 안내했다.
현장에서는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 직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홈플러스에서 26년간 근무를 이어온 김규순씨는 “직원들 대부분이 적금을 깨거나 건강보험료가 미납돼 대출도 못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저 역시 당장의 생활비가 없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안산점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다 2021년 폐점 이후 안산고잔점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안산고잔점 역시 지난달 문을 닫으며 지난 3일 평촌점으로 전배됐다. 김씨는 “해보지도 않은 과자 가공 업무에 강제 배치돼 박스를 옮기다 수술했던 허리가 안 좋아졌다”며 “월급이라도 제대로 나오면 다 같이 힘을 내보겠는데 현장 직원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안산고잔점 상당수 직원은 이번 폐점 당시 다른 점포로 가는 대신 그만두는 것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서점에서 근무 중인 오지운씨도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오씨는 “시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시고, 시아버지는 얼마 전 치매 진단을 받았다. 집안 살림을 200여만의 제 월급에 거의 의지해왔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번에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아들의 앞날도 걱정이다. 제가 정당하게 일한 대가를 읍소해야 하는 상황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월곡점 직원 전인순씨는 “대학교 2학년이 된 늦둥이 아들의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내야 하는데 급여가 갑자기 연체됐다”며 “미래를 위해 모아뒀던 적금을 깨야 했다”고 했다.
홈플러스 청산을 막을 ‘골든 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법정관리 기한은 내달 3일까지다. 법원 판단에 따라 최장 2026년 9월까지 연장될 수 있지만,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가 현재 이렇다 할 자구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업부 매각뿐 아니라 3000억원 규모 긴급운영자금대출(DIP)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 법원이 파산을 선고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부가 직접 나서달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지난 3일 홈플러스 납품업체 900곳은 서울 종로구 국민권익위원회 정부합동민원센터를 찾아 청와대와 금융위원회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홈플러스가 끝내 정상화를 이루지 못하고 파산할 경우 마지막까지 회생 가능성을 믿고 함께해온 수많은 중소 납품업체가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홈플러스가 파산하면 직원 2만명은 물론 입점·협력업체와 직원들까지 약 10만명이 일자리를 잃거나 대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홈플러스 정상화를 요구하며 단식과 ‘삼보일배’ 투쟁에 나섰던 마트노조도 정부 개입과 회생 절차 연장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안수용 홈플러스 지부장은 “사태를 이렇게까지 악화시킨 MBK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차입인수(LBO) 방식으로 홈플러스를 무리하게 인수한 뒤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며 “홈플러스가 청산되면 사모펀드는 별다른 피해 없이 빠져나가고 평범한 수만명 노동자들만 일자리를 잃게 되는 상황이다. 3월 전에 정부가 나서서 제대로 된 회생계획을 논의할 수 있는 테이블이라도 마련해달라”고 강조했다.
일단 정부는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8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폐점과 관련해 공적 개입 여부 의견을 묻자 김병환 당시 금융위원장은 “점포를 매각하지 말라고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만 답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