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조선 마지막 황후의 장례식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입력 :
수정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1966년 ‘마지막 황후 윤비(尹妃)’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다. 윤비란 조선 27대 임금 순종(1907∼1910년 재위)의 부인이다. 말 그대로 윤씨 성(姓)을 가진 왕비를 대중이 쉽게 부르는 호칭이었다. 

 

당시는 조선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국왕을 황제로 높여 예우하던 시절이니 왕비 말고 황후가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윤비 대신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라는 존칭이 널리 쓰인다. 영화에선 배우 김지미(1940∼2025)가 주인공 순정효황후 역을 맡아 10대 소녀부터 70대 노인까지 거의 60년 인생 역정을 소화하며 열연을 펼쳤다.

순정효황후(1894∼1966)의 사진. 그는 조선 27대 임금이자 마지막 황제인 순종(1907∼1910년 재위)의 부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순정효황후(1894∼1966)의 사진. 그는 조선 27대 임금이자 마지막 황제인 순종(1907∼1910년 재위)의 부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순정효황후는 1894년 경기 양평에서 태어났다. 1907년 고작 13세 나이로 당시 대한제국 황태자 신분이던 순종과 혼례를 치렀다. 남편과 나이가 무려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났으니 결혼 생활이 행복했을 리 만무하다. 1926년 순종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 가까이 부부로 살았지만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순종의 동생 영친왕의 부인으로 순정효황후에겐 동서가 되는 이방자(李方子·1901∼1989)는 훗날 회고록 ‘세월이여 왕조여’(1985)에서 평생 답답한 궁궐에 갇혀 외롭게 지내다가 30대 초반 과부가 된 순정효황후를 떠올리며 “그 삶이 너무 슬퍼 같은 여자로서 동정한다”고 밝혔다.

 

1945년 일제강점기가 끝났으나 조선도, 대한제국도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공화국을 표방한 신생 대한민국이 들어섰다. 순정효황후 등 조선 황실 인사들은 평민으로 내려앉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이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6·25 전쟁의 와중에 순정효황후는 정부와 함께 피난하지 못하고 거처인 창덕궁 낙선재에 방치됐다. 서울을 점령하고 궁에 난입한 북한 인민군 병사들이 무례하게 굴며 위협해도 꼿꼿한 자세로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대통령은 한때 “창덕궁은 국유 재산”이라며 낙선재에서 순정효황후를 내몰기도 했다. 그는 4·19 의거로 이승만정부가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낙선재에 복귀할 수 있었다.

1966년 2월13일 순정효황후의 장의 행렬이 생전에 고인이 기거했던 창덕궁을 떠나고 있다. SNS 캡처
1966년 2월13일 순정효황후의 장의 행렬이 생전에 고인이 기거했던 창덕궁을 떠나고 있다. SNS 캡처

순정효황후는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인 1966년 2월3일 낙선재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그 뒤 열흘이 지난 2월13일 조선 마지막 황후의 장의 행렬이 창덕궁을 출발해 종로 3가, 동대문, 신설동 등을 거쳐 경기 남양주 유릉(裕陵)으로 향했다. 40년 전에 저세상으로 간 남편 순종이 묻힌 곳이다. 장의 행렬은 연인원 1100여명과 차량 55대가 동원돼 길이가 1.5㎞에 달했으며, 조선 왕조 최후의 국상(國喪)을 보려는 수십만 인파가 모여 대혼란이 빚어졌다고 한다. 당시 장례식을 보도한 신문 기사는 “황후의 호사스러운 장의 행렬이 신생 공화국 수도의 거리를 서서히 누벼 (…) 순종 곁에 잠들었다”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몰려든 시민들은 석양에 비낀 왕조의 잔영(殘影)마저 사라져 가는 최후의 순간을 지켜보았다”고 덧붙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