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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출신 맡던 ‘장성 인사’, 일반 공무원 손으로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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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정부 시절인 1972년 1월 최광수 당시 외무부 아주(亞州)국장이 국방부 군수차관보로 승진했다. 외무고시 합격 후 줄곧 외교관의 길만 걸은 인사에게 국방부 고위직을 맡긴 것은 의외였다. 민간인 공무원과 군인의 계급 체계가 서로 다른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방부 차관보는 통상 현역 육군 중장이 임명되는 자리였다. 최 신임 차관보는 외무부 국장이 되기 전 주미 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일했었다. 이에 김동조 당시 주미 대사가 대사관에 무관으로 나와 있던 육군 소장에게 “자네도 아는 최광수가 이번에 자네 상관이 됐어”라고 농담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군수차관보는 중장급 보직이니 소장보다 높다는 뜻에서다. 그 말을 들은 무관은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졌다고 한다.

 

육군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 풍경. 정예 육군 장교 양성을 위해 개교한 육사는 1960년대 군사정권 출범 후 한때 ‘정치 군인 양성소’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육군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 풍경. 정예 육군 장교 양성을 위해 개교한 육사는 1960년대 군사정권 출범 후 한때 ‘정치 군인 양성소’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오랫동안 국방부는 ‘육방부’로 통했다. 현역 육군 장교들이 국방부 요직을 모조리 독식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담긴 표현이다. 군사정부 시절 국방부 차관보에는 육군 중장, 국장은 소장, 과장은 대령이 각각 보임되는 것이 관행이었다. 여기에 장·차관 직위도 거의 대부분 예비역 육군 장군들 몫으로 돌아갔다. 합동참모본부(합참)에서 ‘합동’이란 육·해·공군 3군 합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에선 철저히 육군 위주로 운영된다는 취지로 ‘육참’이라고 불린 시절이 있었다.

 

윤석열정부 시절인 2023년 12월 당시 해군본부 교육정책담당으로 일하던 이희완 대령이 국가보훈부 차관으로 기용됐다. 대다수 언론이 ‘깜짝 발탁’이란 표현을 쓰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방부에서 대령이면 과장 보직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훈부와 국방부는 전혀 별개의 조직이고, 2002년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로서 충무무공훈장 수훈자인 이 신임 차관은 보훈 행정 지도자로 적임자였다. 그래도 ‘대령=과장’ 공식에 익숙한 군인들 입장에선 50여년 전 최광수 군수차관보 발탁을 능가하는 파격적인 인사가 아닐 수 없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 2025년 9월 합참의장 이·취임식에서 장병들의 거수경례에 거수경례로 답하고 있다. 안 장관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육·해·공군 장성 경력이 없는 최초의 국방장관이다. 뉴시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 2025년 9월 합참의장 이·취임식에서 장병들의 거수경례에 거수경례로 답하고 있다. 안 장관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육·해·공군 장성 경력이 없는 최초의 국방장관이다. 뉴시스

17일 국방부에 따르면 ‘국방부와 그 소속 기관의 직제 시행규칙’ 개정안이 최근 입법 예고가 이뤄졌다. 여기에는 국방부 인사기획관리과장 직위를 현역 군인 말고 일반 공무원한테 맡기는 내용이 포함됐다. 인사기획관리과장은 우리 군의 인사 정책을 총괄하면서 장성 인사 업무까지 담당해 국방부 내 요직 중의 요직으로 꼽혀 왔다. 그 때문인지 주로 육군사관학교(육사) 출신 대령들이 이 자리를 거쳐 갔다. 군에 대한 문민 통제 원칙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이라고 하겠다. 그렇더라도 현역 군인, 특히 육군 장교들 입장에선 군인 몫으로 배정됐던 국방부 보직이 하나둘 사라지는 현실이 아쉬울 법하다. 그릇된 12·3 비상계엄 사태가 군에 남긴 상처가 너무나 크고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