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부과한 이른바 '상호관세'가 20일(현지시간) 미 연방 대법원의 위법 판결로 무효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엄청난 무역적자를 이유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 세계 무역 상대국에 부과한 10%의 기본관세와, 그것 위에 국가별 차등세율을 더해서 매긴 상호관세의 법적 기반이 공히 무너진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큰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된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대체 수단을 통해 전 세계에 10%의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는 등 자신의 관세정책 효력 유지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전 세계의 기존 무역 질서를 파괴하며 대격변을 일으킨 '트럼프발 관세' 혼란은 또 다른 불확실성을 더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모습이다.
◇ 美대법원 "관세 부과 권한, 대통령 아닌 의회에"…상호관세에 '마침표'
미 대법원은 이날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른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및 멕시코, 캐나다, 중국 등에 대한 '펜타닐 관세' 부과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지난 1, 2심 판결을 유지한 것이다.
대법원 9명 가운데 '위법' 6명, '합법' 3명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판결의 핵심은 IEEPA에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권한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것은 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지난 1977년 발효된 IEEPA는 외국에서의 상황이 미국 국가 안보나 외교정책, 미국 경제에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험의 원인이 된다고 판단하면 대통령에게 국가 비상사태 선포로 경제 거래를 통제할 여러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들 권한 중 하나가 수입을 '규제'(regulate)할 권한이며,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수입 규제 권한에는 '관세'도 포함된다고 주장해왔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관세 부과를 위해 IEEPA를 발동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관세는 의회의 고유 권한이며 IEEPA가 대통령에게 주는 수입 규제 권한에 관세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미국 헌법 제정자들은 평시 관세 부과 권한을 '의회 단독'으로 부여했다"며 "관세에 외교적 영향이 있다고 해서 의회가 모호한 표현이나 신중한 제한 없이 관세 권한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또 "대통령은 수량, 기간, 범위의 제한이 없는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엄청난 권한을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주장하는 권한의 폭, 역사와 헌법적 맥락을 고려하면 그가 이런 권한을 행사하려면 분명한 의회의 승인을 식별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상호관세 등 IEEPA에 입각해 부과한 관세를 공식적으로 종료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 '정치적 타격' 입은 트럼프, 대체 카드로 '관세 유지' 의지
상호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관세 정책으로, 이번 대법원 결정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2년 차에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됐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표심 확보 차원에서 관세 수익으로 추진하려던 각종 정책에 차질이 생긴 데다, 대외적으로도 세계 각국을 굴복시켜온 가장 강력한 위협 수단을 거의 상실하게 됐기 때문이다.
집권 2기 들어 논란이 된 자신의 정책에 대체로 손을 들어주던 보수 우위의 대법원마저 등을 돌린 것은 더욱 뼈아프게 됐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대체 수단을 꺼내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뒤 백악관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전 세계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뒤 곧바로 미 동부시간 24일 0시 1분부터 해당 관세가 발효하도록 하는 포고문을 냈다.
다만 산업에 필요한 핵심광물, 승용차, 물가를 건드릴 수 있는 일부 소비재와 식료품 등은 이러한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발표한 10%의 글로벌 신규 관세는 대법원 판결로 인해 더 이상 징수할 수 없게 된 10%의 '기본관세'(상호관세의 일부로 포함됨)를 우선 충당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는 새 '10% 새 관세' 부과 발표와 동시에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관세 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무역법 122조는 대통령이 국제수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최장 150일간 최대 15%의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하며,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의 부당하거나 불합리하고 차별적 행동 등에 맞서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준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성명에서 USTR이 개시할 무역법 301조 조사에 대해 "이들 조사는 주요 교역 상대국 대부분을 커버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혀 한국도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또 다른 관세 수단인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201조, 관세법 338조 등을 거론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표는 무효가 된 상호관세 대신 앞으로 150일간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동안 외국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뒤 추가로 관세를 부과해 결과적으로 기존 상호관세만큼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뜻이다.
이날 판결이 트럼프 관세정책의 또 다른 한 축인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에는 적용되지 않는 만큼 품목별 관세를 확대하겠다는 의중도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대법원 판결에 "매우 실망했다"고 비판한 뒤 "좋은 소식은 이 끔찍한 판결을 한 대법원 전체와 의회도 인정하고, IEEPA에 따른 관세보다 강력한 수단, 방법, 법규, 권한이 있다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걷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 '관세환급' 혼란 불가피…美와 무역합의한 국가들 대처 주목
이날 대법원 판결은 '관세 환급'이라는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할 전망이다.
대법원이 이날 판결에서 그간 '위법하게' 징수한 관세의 환급 문제를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상호관세 위법 판결에 대비해 다양한 업종의 미국 기업들뿐 아니라 외국 기업의 미국 내 자회사들이 관세 반환 소송을 제기했고, 이날 판결 이후 환급 소송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그들(대법관들)은 의견을 쓰는 데 수개월이 걸렸는데도 그 문제를 논의하지도 않았다"면서 앞으로 수년간 소송에서 다투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소수의견을 낸 보수성향 브랫 캐버노 대법관은 "정부가 수십억 달러를 반환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결에)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지적한 뒤 "그 과정은 엉망진창(mess)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올린 관세를 인하하는 조건으로 천문학적인 대미투자를 포함하는 새로운 무역 합의를 한 한국 등 일부 국가들이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된다.
상호관세가 무효가 됐기 때문에 무역 합의도 무효라는 주장을 펼칠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새로운 관세 수단을 꺼내든 상황에서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IEEPA 관세를 활용해 다른 나라와 체결한 무역 합의가 여전히 유효하냐는 질문에 "다수는 유효하다. 일부는 유효하지 않을 텐데 그런 것은 다른 관세로 대체하겠다"고 답했다.
한국의 경우 당장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미국내 후속 움직임, 다른 나라 정부의 대응 등을 봐가며 대처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이번 대법원 판결 직후 "정부는 연방대법원 판결 내용 및 미국 정부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방향으로 (대응 방안을)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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