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되면서 정부가 30여년 만에 석유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하게 됐다. 기름값은 사흘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안정화되는 듯 보이지만 이번 유가급등의 주원인인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여전히 ‘악화일로’에 있다. 통상 국제유가가 2주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가에 반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기름값 안정도 장담하긴 이르다.
◆상한제 시행으로 사흘째 하락세 기름값
13일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가운데 전국 평균 주유소 기름값이 사흘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날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오전 2시 기준 전국 주유소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893.3원으로 전날보다 5.5원 내렸다. 경유 가격은 같은 시각 1911.1원으로 7.9원 하락했다. 경유 가격은 여전히 휘발유 가격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 지역 기름값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918.9원으로 전날보다 8.1원 내렸다. 서울 평균 경유 가격은 13.5원 하락한 1922.7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주유소 기름값은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지난 10일 최고점을 찍은 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2일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1898.8원, 경유 가격은 1919.0원으로 각각 전날보다 5.5원, 8.5원 내렸다.
정부는 13일부터 정유사의 공급가격 최고액을 ℓ당 보통 휘발유는 1724원,자동차용 경유는 1713원, 실내 등유는 1320원으로 지정하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향후 중동 상황과 유가 동향 등을 살펴 2주 단위로 최고가격을 재지정할 계획이다.
정유사는 이날부터 26일까지 2주간 주요소에 유류제품을 공급하며 해당 가격 이상을 받을 수 없다. 유가 자유화 조치 이후 30년 만에 정부가 시장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사례다.
◆국제유가는 출렁, 본격적인 쓰나미 가능성도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외부 충격이 민생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석유 최고가격제 집행과 에너지 세제 조정, 소비자 직접 지원 등을 포함한 대책을 신속히 검토하라고 주문하며 본격적으로 논의돼 이날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통상 국제유가 변동은 약 2∼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돼 아직 유가가 안정됐다고 판단하긴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이날 국제 유가는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미국·이스라엘을 향한 초강경 대응을 선언하며 급등했다. ICE선물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100.46달러로 9.2% 올랐다. 종가 기준 100달러를 넘어선 건 3년 7개월 만에 처음이다.
최고가격제는 정부가 석유 제품 가격에 상한선을 설정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가격이 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 근거해 가격 급등 등으로 국민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경우 정부가 개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한국은 1997년까지 정부가 석유 가격을 관리하는 체계를 운영해 왔다. 이후 경제 자유화 정책에 따라 석유 가격을 시장에 맡기는 체계로 전환했다.
◆정부 “모두의 위기, 공동체 정신 필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최근 유가가 급등하며 일부에서 과도한 이익 추구 등 불법행위가 발생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단속보다 더 중요한 건 공동체 정신”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날 오전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범부처 합동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지금은 누군가의 위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위기”라며 이같이 당부했다.
이날은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한 첫날이다. 김 장관은 오전 일찍부터 석유 가격 안정화 및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행보에 나섰다.
김 장관은 최고 가격제에 대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과도한 불안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한 것”이라며 “정유사와 주유소, 유통업계, 그리고 소비자까지 모두가 조금씩 고통을 분담하고 서로를 배려할 때, 우리는 이 어려움을 가장 빨리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관계부처에서는 석유 시장 가격 담합과 유가 보조금 부정 수급, 탈세 등 부정행위를 엄중하게 단속해 달라”면서 “석유관리원과 지방자치단체는 고위험 주유소에 대해 월 2000회 실시 중인 특별 현장 점검을 내실 있게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 지자체, 한국석유공사 등으로 구성된 점검단이 지난 6일부터 불법 석유 유통 위험군 주유소를 대상으로 집중 단속을 벌인 결과, 20건의 불법행위가 적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