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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용기가 제주 올레길 벤치로…자연과 사람이 만드는 ‘순환 생태계’ [김기자와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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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이론’에 락앤락 이념 접목
자원순환의 설계자로 앞장서고 있어
‘용기’ 전해 세상 아픈 곳 어루만져
“ESG,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기를”

지난 11일 서울 중구 락앤락 본사. 안성일 CHRO(최고인사책임자)의 집무실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든 느낌은 의외로 좁고 밝다는 것이었다. 육중한 가죽 소파나 어두운 색깔의 책상은 없었다. 대신 여덟 명만 앉아도 꽉 찰 듯한 테이블과 화사한 톤의 소파가 놓여 임원실보다 아담한 간이 회의실에 가까웠다.

 

안 CHRO는 “이곳이 회사 내 사무실 중 제일 좁다”며 웃었다. 자리를 비울 때는 언제든 직원들이 회의실로 쓸 수 있도록 개방한다는 그의 철학은 락앤락이 지향하는 실용과 수평의 가치와 고스란히 닿아 있다. 락앤락의 인사 사령탑이자 ESG 위원장(환경·사회·지배구조)인 그가 머무는 이곳은 역설적으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ESG 경영과 ‘사람 중심’ 철학이 가장 밀도 있게 응축된 발신지다.

 

안성일 CHRO(최고인사책임자)가 지난 11일 서울 중구 락앤락 본사에서 진행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윤종 기자
안성일 CHRO(최고인사책임자)가 지난 11일 서울 중구 락앤락 본사에서 진행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윤종 기자

 

◆ESG는 지구와의 ‘공존’…순환의 생태계로◆

 

안 CHRO가 정의하는 ESG는 ‘착한 기업 코스프레’가 아니다. 그는 ESG를 ‘지속 가능한 생존 전략’이자 ‘지구라는 생명체와의 공존’으로 설명했다. 지구를 자정하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Gaia Theory)’에 락앤락의 경영 이념인 ‘환경과 사람을 생각하는 기업’을 접목했다. 그는 “환경 보호 차원을 넘어 사람과 자연이 돌고 도는 ‘순환의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철학은 구체적인 수치와 지표로 증명된다. 락앤락은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2024년에는 2022년 대비 직접 온실가스 배출량(Scope 1)을 18.4%, 간접 배출량(Scope 2)은 34.6% 감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화학적 재활용 폴리프로필렌을 적용한 제품 등의 ISCC PLUS 인증 획득 등은 락앤락이 단순한 제조사를 넘어 ‘순환경제 프로세스’의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몽골의 사막화 방지를 위해 투브 아이막 바양항가이 솜 지역에 1004그루의 나무를 심은 락앤락의 ‘러브 포 몽골리아’ 캠페인. 락앤락 제공
몽골의 사막화 방지를 위해 투브 아이막 바양항가이 솜 지역에 1004그루의 나무를 심은 락앤락의 ‘러브 포 몽골리아’ 캠페인. 락앤락 제공

 

회사는 ‘러브 포(Love for)’ 시리즈 캠페인으로 철학을 현실로 구현했다. 몽골의 사막화 방지를 위해 투브 아이막 바양항가이 솜 지역에 1004그루의 나무를 심은 ‘러브 포 몽골리아’가 대표적이다. 단순히 나무만 심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숲에서 현지인들이 열매로 기름을 짜고 수익을 내며 다시 숲을 넓혀가는 순환 구조를 설계했다. 안 CHRO는 “탄소를 땅속에 가두는 효과뿐만 아니라, 터전을 잃은 유랑민들에게 생계의 기반을 돌려주는 게 제가 생각하는 인사의 영역이자 ESG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러브 포 플래닛(Love for Planet)’ 캠페인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락앤락이 제주 올레길에 모작 벤치를 설치했다. 락앤락 제공
지난해 ‘러브 포 플래닛(Love for Planet)’ 캠페인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락앤락이 제주 올레길에 모작 벤치를 설치했다. 락앤락 제공

 

국내에서 진행 중인 ‘러브 포 플래닛’도 마찬가지다. 2020년부터 시작된 이 캠페인은 오래된 폐용기를 수거해 캠핑용품, 건축자재, 공공시설물 등으로 재탄생시킨다. 폐용기는 제주 올레길의 ‘모작 벤치’ 57개로 거듭났고, 지난해에도 3830명이 참여해 2만여개의 폐용기를 모으는 등 관심을 받았다. 이처럼 락앤락은 플라스틱을 활용하는 기업인만큼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자원 순환의 설계자로 앞장서고 있다.

 

안성일 CHRO(최고인사책임자)가 지난 11일 서울 중구 락앤락 본사에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한윤종 기자
안성일 CHRO(최고인사책임자)가 지난 11일 서울 중구 락앤락 본사에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한윤종 기자

 

◆‘용기(容器)’에 담은 ‘용기(勇氣)’…글로벌 상생으로

 

안 CHRO가 가장 집중하는 영역은 ESG의 ‘S(Social)’, 즉 사람이다. 그는 기업이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가장 큰 가치 중 하나로 ‘용기(勇氣)’를 꼽았다. 락앤락의 주력 제품인 ‘용기(容器)’와 동음이의어인 점에 착안, 소외 계층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삶의 의지를 전달하겠다는 의지다. ‘락앤락과 함께하는 용기’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는 사회공헌 활동은 한부모 가족, 장애인, 재난 지역 등 전 세계 곳곳의 아픈 곳을 어루만진다.

 

베트남 시장에 대한 애정이 특히 남다르다. 한국 기업으로서 베트남 고객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는 안 CHRO는 홍수 피해 지역 구호나 교육 기회 확대 등으로 락앤락을 단순한 외산 브랜드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로 각인시킨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요리 전문 고등학생들에게 핸드 블렌더를 기증하며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등 사람 중심의 ESG를 실천 중이다. 이는 실제 매출과 브랜드 신뢰도로 연결된다. 락앤락은 ‘2025 베트남 소비자가 신뢰하는 50대 브랜드’에 선정되는 등 위상을 굳혔다.

 

락앤락이 ‘2025 베트남 소비자가 신뢰하는 50대 브랜드’에 14년 연속 선정됐다고 지난해 12월22일 밝혔다. 락앤락 제공
락앤락이 ‘2025 베트남 소비자가 신뢰하는 50대 브랜드’에 14년 연속 선정됐다고 지난해 12월22일 밝혔다. 락앤락 제공

 

회사 내부에서는 MZ세대 직원들이 ESG 활동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전략을 취한다. 올레길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Plogging) 활동을 업무 시간 중에 배치하는 식이다. 직원들이 억지로 참여하는 봉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회사의 가치에 공감하게 된다고 안 CHRO는 설명했다.

 

안 CHRO는 “ESG가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었으면 한다”며 “락앤락이라는 기업이 존재함으로써 지구가 조금 더 깨끗해지고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는 ‘순환의 상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