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EU 산하 기관 유치에 들뜬 프랑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돌았다. 가장 설득력 있는 지적은 세계적 강대국으로 꼽히는 영국이 정작 EU에선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했다는 점인 듯하다. 오늘날의 EU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3년 출범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모체다. 2차대전은 유럽 대륙의 오랜 라이벌인 독일과 프랑스의 갈등에서 비롯했다. 독일은 프랑스 알자스·로렌의 철광석이 탐났고, 프랑스는 독일 루르 지역의 석탄을 원했다. 두 나라와 주변국들이 석탄·철광석 같은 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하면 전쟁 발발을 막을 수 있으리란 소박한 바람이 곧 유럽 통합의 시발점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세계일보 자료사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세계일보 자료사진

ECSC 설립을 위한 논의를 앞두고 프랑스는 영국에도 초청장을 보냈다. 하지만 영국은 이에 불응했다. 2차대전을 겪으며 미국, 소련(현 러시아)과 더불어 ‘세계 3대 강국’으로 통하게 된 영국은 스스로의 역할을 유럽에 한정하려 들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영국은 지구촌 곳곳에 식민지를 두고 ‘대영제국’으로 행세하고 있었다. 영국 입장에선 바다 건너 유럽 대륙보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영연방(Commonwealth)과의 관계가 훨씬 더 중요했다. 그러는 사이 ECSC는 1967년 유럽공동체(EC)로 확대됐다. EC 회원국들의 빠른 경제 성장에 자극을 받은 영국은 1973년에야 EC에 가입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독일·프랑스 두 나라가 EC의 주도권을 확고히 한 뒤였다.

 

EC는 프랑스 또는 독일 정부가 어떤 새로운 정책안을 마련하면 양국끼리만 긴밀히 협의한 뒤 다른 회원국들에게 통보하고 이사회 의결 절차를 거쳐 집행하는 의사 결정 구조가 정착해 있었다. 이는 1993년 EC가 EU로 탈바꿈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늦깎이’ 회원국 영국으로선 독일·프랑스 양국의 EU 내 기득권을 뚫고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천하의 영국이 겨우 이런 대접이나 받고 있어야 하나?’ 2016년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놓고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약 52%의 찬성률로 탈퇴가 확정된 배경엔 영국인들의 불쾌한 심리가 깔려 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 있던 EU 산하 기관들은 새 보금자리를 찾아 다른 회원국으로 옮겼다. 영국은 자존심을 챙겼는지는 몰라도 경제적 실리는 놓쳤다.

25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오는 2028년 문을 열 EU 관세청의 릴 유치를 기뻐하며 SNS에 올린 게시물.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릴은 인구가 약 23만명으로 프랑스의 10번째 대도시에 해당한다. 마크롱 대통령 SNS 캡처
25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오는 2028년 문을 열 EU 관세청의 릴 유치를 기뻐하며 SNS에 올린 게시물.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릴은 인구가 약 23만명으로 프랑스의 10번째 대도시에 해당한다. 마크롱 대통령 SNS 캡처

새로 출범할 EU 관세청(EUCA) 소재지로 25일 프랑스 릴(Lille)이 선정됐다. EU 회원국 관세 당국들의 정책을 조율할 EUCA는 직원 수가 250명에 달하며 오는 2028년 업무를 개시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로마, 폴란드 바르샤바, 네덜란드 헤이그 등 9개 도시가 유치전에 뛰어든 가운데 결국 릴로 낙점되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마크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는 (프랑스 중앙 정부와 릴이) 공동으로 쏟아부은 엄청난 노력의 결과”라며 “프랑스 자부심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은 진작 빠져나가고 독일은 취임 후 1년도 안 된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의 외교 경험이 아직 일천한 가운데 대통령으로 이미 9년간 일한 마크롱의 노련함이 EU에서 독주하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