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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에 계엄까지…우여곡절 겪은 간첩법 개정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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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일본 전시형법 모방해
여태 써오다 73년 만에야 개정
전문가들 “산업·경제 안보까지
간첩죄 영역에 포섭해 강력한
국가적 방어막을 구축한 입법”

적용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 및 이에 준하는 단체’로 넓히는 형법 98조(간첩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이달 초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이 법 개정이 현실화하게 됐다. 일본의 전시형법을 모방해 1953년 처음 만들어진 간첩법이 73년 만에 개정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간첩법 적용 범위를 적국에 한정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법 개정은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2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8차 본회의에서 전날 상정된 형법 개정안 수정안(법왜곡죄)이 여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2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8차 본회의에서 전날 상정된 형법 개정안 수정안(법왜곡죄)이 여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쟁에 계엄까지···개정 논의 우여곡절

 

개정 간첩법은 ‘외국 등’을 위한 간첩 행위를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조항은 종전과 동일하다. 아울러 간첩 행위를 ‘적국 또는 외국을 위해 지령, 사주, 그 밖의 의사 연락 하에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중개하거나 이를 방조한 행위’로 구체화했다. 이전엔 없던 간첩 행위에 대한 규정을 명문화함으로써 법 적용 남발을 막는 안전장치를 둔 셈이다.

 

개정 전 간첩법은 적국 관련 규정만 두고 있었다. 그런데 ‘적국’이 사실상 북한뿐이다 보니 지구상 그 어떤 나라에 국가기밀을 유출해도 북한에만 빼돌린 것이 아니면 간첩법으로 처벌할 수 없었다. 다변화한 국제정세 속 안보, 특히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법망 미비 상황이 70년 넘게 지속돼 온 것이다.

 

간첩법 개정안은 2004년 더불어민주당 최재천 전 의원을 시작으로 2011년 같은 당 송민순 의원, 2014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이만우 의원 등이 잇달아 발의했다. 그러나 극심한 정쟁 속 국회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폐기되기 일쑤였다. 최재천 전 의원은 세계일보에 “국가보안법 폐지 시 간첩죄의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간첩죄의 구성요건을 확장하는 내용이었다”고 개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최 전 의원과 비슷한 시기 개정안을 발의했던 새누리당(현 〃) 이철우 전 의원(현 경북지사) 측은 “세계적으로 테러단체가 기승을 부리면서 간첩죄를 폭넓게 적용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었다”고 법 개정 필요성을 설명했다. 현역 의원 시절 간첩법 개정안을 세 차례 발의했던 민주당 홍익표 전 의원(현 청와대 정무수석)은 “‘적국’은 제한된 개념이니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로 확대해 늘어나고 있는 경제기밀 유출도 막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21대 국회 들어 홍 전 의원과 같은 당 이상헌 전 의원, 김영주 전 국회부의장, 국민의힘 조수진 전 의원이 나란히 개정안을 냈으나 법사위 법안심사 소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2024년 8월 군 정보요원 신상정보 유출 사태가 터지고서야 여야는 22대 국회에서 경쟁적으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해 2024년 11월 법안심사 소위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불법 계엄 사태로 인해 법 개정 논의는 한동안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핵심기술 탈취 막는 예방적 입법 실현”

 

간첩법 개정은 기업들이 보유한 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돼 경제안보가 위태로워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시급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김후곤 전 서울고검장은 법 개정과 관련해 “70여년 만에 ‘적국’이란 낡은 틀을 깨고 ‘국익’을 정조준한 이번 개정은 군사기밀을 넘어 반도체, 방산 등 현대 국가경쟁력의 핵심인 산업·경제안보까지 간첩죄 영역에 포섭함으로써 안보와 경제가 하나 된 시대에 걸맞은 강력한 국가적 방어막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한국산업보안한림원 강기중 회장은 “외국 정부 주도의 우리 기업 핵심기술 탈취를 막아주는 예방적 입법이 실현됐다”고 했고,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안기현 사무국장(전무)은 “반도체 기술 유출로 산업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질 수 있다”며 “경제안보, 나아가 국가를 살리는 간첩법 개정”이라고 평가했다. 유창준 전 국가정보원 방첩국장은 “우리의 핵심기술들이 그간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생각했던 외국 세력들도 앞으로는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첨단기술 유출을 막고 경제안보를 수호하기 위한 법적 안전망을 확보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며 “이재명정부는 이번 개정안 통과를 계기로 더욱 안전한 나라, 경쟁력 있는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했다. 국정원은 특정 법률 개정에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어 “이번 간첩죄 개정을 계기로 방첩 조사 역량을 가다듬고 첩보 수집부터 수사기관의 사법처리에 이르는 전방위적 ‘안보 수호망 구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