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가까운 거리, 깊어지는 호흡 [이상권의 카덴자]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지난달 26일 손열음은 사카리 오라모가 이끈 BBC 심포니와 브리튼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려주었다. 토카타의 질주 속에서도 큰 호를 놓지 않는 구성력, 여린 음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타건이 귀에 남는 밤이었다. 그러나 손열음을 만나는 자리는 그런 큰 무대에만 있지 않다.

 

지난 3월, 드라이브 끝에 원주의 카페 겸 공연장 ‘플레이리스트’에 들렀다. 둥글게 놓인 테이블 사이로 손님 몇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벽면의 큰 스크린에서는 손열음이 고른 연주 영상이 흘렀다. 카운터 옆 카탈로그에는 피아노, 오보에, 하프, 성악, 바이올린까지 한 달 공연 일정이 촘촘히 적혀 있었다. 낮에는 커피 향이 돌고, 저녁에는 같은 자리에서 연주가 시작되는 공간. 이 풍경이 그저 낯설게만 보인다면, 우리는 콘서트홀만을 클래식의 본래 자리라고 너무 오래 믿어온 셈이다.

원주의 ‘플레이리스트’.
원주의 ‘플레이리스트’.

사실 클래식 음악은 처음부터 거대한 홀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런던에서는 회원제를 바탕으로 한 음악회가 열렸고, 파리에서는 살롱이, 빈에서는 거실 음악회가, 라이프치히에서는 카페가 음악의 자리가 되었다. 서양 음악은 그렇게 오랫동안 사적인 친밀함과 공적인 교류가 겹쳐지는 공간에서 자라났다. 19세기 이후 전용 홀이 제도의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우리는 오히려 그 이전의 전통을 주변적인 것으로 여겨온 셈이다.

 

베를린의 음악 살롱은 분명 사적인 응접실이었지만, 많게는 200명 안팎이 드나들며 사실상 작은 공적 무대 구실도 했다. 파리의 카페콘서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술과 음료, 입장료, 허가와 검열이 한데 얽히며 근대 도시의 밤문화를 떠받치던 공간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18세기 라이프치히의 치머만 카페에서는 바흐가 이끈 콜레기움 무지쿰이 입장료 없이 연주했고, 공연 비용은 커피 판매 수입이 메웠다.

 

19세기 빈에서는 메테르니히 체제의 감시를 피해 예술가들이 거실로 모여들었다. 슈베르트와 그의 동인들이 후원자의 아파트에 모여 가곡을 부르고 시를 읽고 토론을 나눈 ‘슈베르티아데’는, 불안한 시대를 잠시 비켜 서게 하는 피난처이자 귀족과 부르주아의 경계가 한동안 느슨해지는 자리였다. 같은 시기 파리에서 활동한 쇼팽이 평생 남긴 대규모 공개 연주가 서른 번 남짓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야상곡과 마주르카가 그토록 섬세한 서정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수천 석의 익명적 무대보다 소수가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을 나누는 살롱의 규모와 감수성에 더 깊이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소가 달라지면 음악의 형식만이 아니라, 그것을 듣는 방식도 함께 달라진다.

이상권 음악평론가.
이상권 음악평론가.

그 장점은 단순히 가깝다는 데 있지 않다. 큰 홀에서는 하나의 울림으로 지나갈 소리가, 여기서는 훨씬 더 세밀한 결로 들린다. 프레이즈 끝의 숨, 페달을 뗀 뒤 남는 잔향, 활이 줄을 바꾸는 순간의 압력, 음이 사라진 뒤 방 안에 머무는 정적까지 감지된다. 그 순간 악곡의 구조는 악보의 형식이 아니라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호흡과 긴장의 흐름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이런 공간은 협주곡마저 실내악처럼 다가오게 만든다.

 

클래식 음악의 미래가 반드시 거대한 콘서트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천 석 규모의 공간이 빚어내는 압도적인 음향은 분명 대체할 수 없지만, 음악이 사람의 체온에 닿는 거리는 그런 웅장함만으로는 좁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공간은 클래식이 오랫동안 품어온 또 다른 본질을 일깨운다. 연주자와 청중이 같은 숨결을 나누고, 소리가 거대한 울림을 넘어 깊은 교감으로 스며드는 경험 말이다. 콘서트홀 밖으로 걸어 나온 클래식은 결코 품격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음악을 더 가까이, 더 깊숙하게, 다시 사람 곁으로 돌려놓는 일이다.

 

글·사진 이상권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