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부터 이 아파트에 도입된 로봇 배달원 M3는 자율주행 로봇 스타트업 모빈의 최진 대표(37)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현장에서 만난 최 대표는 “대학생 때 ‘계단을 오르는 휠체어’를 떠올렸고 ‘바퀴만으로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을 죽기 전에 구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창업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현대자동차연구원 출신으로 남양∙의왕연구소에서 약 10년간 상용차 엔진 개발 담당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2018년 내부 연구원을 대상으로 한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바퀴만으로 장애물을 극복하는 배달 로봇 시제품을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 이후 현대자동차그룹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제로원’의 사내스타트업으로 지원해 2022년 12월 분사했다. 최 대표는 자율주행 기술이 더 이상 실험실 기술이 아니라 ‘생활 서비스’로 구현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로봇 서비스는 기술 검증과 실증 단계를 넘어 확산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배달의 경우 사람이 하는 서비스와 유사한 편의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빈의 핵심 경쟁력은 로봇의 ‘바퀴’, 즉 장애물 극복 능력에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같은 이족 보행을 하지 않아도 모빈 로봇들은 4개의 바퀴로 계단, 경사, 보도블록 등을 보조 장치 없이 통과한다. 이와 관련해 획득한 특허 기술만 30여개에 이른다. 현재는 도시 생활 공간을 중심으로 시범 운영하고 있지만, 향후 산과 오지 등을 종횡무진하며 지뢰 등을 탐지하는 군용 로봇으로 활용하는 구상도 갖고 있다.
M3는 배달 주문이 없다고 해서 쉬지 않는다. ‘콜’이 없을 때는 단지 내 폐쇄회로(CC)TV가 없는 사각지대 등을 순찰하며 주민 안전을 돕는다. 향후 각 세대가 호출하면 M3가 자녀의 이동을 돕는 안심 귀가 서비스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M3는 모빈의 ‘M’에 제품 개발 순서를 붙인 것으로, 최 대표는 ‘폴리스’(Police)의 P에 두 번째 모델을 의미하는 ‘P2’도 소개했다. P2는 예방 순찰과 감시, 단속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로봇으로 올해 6월부터 경찰청 실증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P2는 라이다뿐 아니라 적외선(IR) 카메라와 번호판 인식 장비 등 다양한 센서를 탑재해 야간 감시∙단속이 가능하도록 개발했다.
“P2는 과속이 잦은 구간에서 차량 속도를 감지해 번호판을 촬영하거나 인파가 몰릴 경우 통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경찰의 순찰 인력 부족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 거죠. 배달만 해도 라이더 분들이 수익성 높은 장거리를 선호하고 단거리는 꺼리는 편인데 이런 부분을 로봇이 대체할 수 있는 겁니다.”
P2 같은 로봇이 상용화되면 아파트 단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안이 불안한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에서 순찰 로봇이 방범대원으로 24시간 활약하는 모습도 기대할 수 있다.
최 대표는 로봇 시장이 로봇청소기와 유사한 성장 경로를 밟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로봇청소기가 나온 지 엄청 오래됐는데 초반에는 장애물도 못 넘고 사람이 일일이 간섭해야 해서 외면 받았지만 기술 고도화로 지금은 필수 가전으로 자리 잡았다”며 “로봇 서비스도 확산 변곡점에 들어섰다고 본다”고 말했다.
제도적 환경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 과거에는 규제 샌드박스에 의존해 실증 사업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법적 기반이 일부 마련됐다. M3의 경우 교통사고가 나면 ‘보행자’로 간주된다. 이날 횡단보도를 2개나 건넌 M3는 그중 신호가 없는 곳에선 차량이나 사람이 완벽하게 정리될 때를 기다린 뒤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도로를 건너갔다.
최 대표는 “아무 로봇이나 실외를 돌아다닐 수 없다”며 “M3가 실외를 돌아다니며 횡단보도까지 건널 수 있는 건 로봇진흥원의 안전성 검증을 거쳐 보행자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프트웨어와 각종 하드웨어 등 엄격한 기준을 충족했는데 이 검증을 통과한 업체가 많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나와 이제는 17명의 직원을 둔 국내 30대 청년 사업가의 제품에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미래형 도시 구축에 적극적인 중동 부국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모빈은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지난해 1월부터 배달∙순찰 로봇 실증 사업을 진행했다. 현재는 전쟁 여파로 중단된 상태다.
최 대표는 ‘큰 용기가 필요한 창업의 길’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처음부터 제가 창업을 하려던 건 아닌데 좋은 동료를 만나고 로봇의 가능성을 보면서 그때그때의 의사결정이 지금에 이르게 했다”며 “리조트, 대학, 아파트 단지 등에서 실증 사업 또는 서비스를 하면서 매출도 내고 있지만 자생하기까진 시간이 걸리는 만큼 후회스럽기도 했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기술적으로는 이미 다 구현해놓은 상태라 (서비스 도입이) 확산하기 직전의 시점에 와 있다”며 “양산을 하게 되면 로봇 단가가 10분의 1 정도로 저렴해질 수 있어 그만큼 외부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언젠가 사람들이 로봇을 삶의 일부로 생각하는 날이 올 것”이라며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로봇 서비스가 스며들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