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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든 관객수 흥행은 양극화… K영화 살길은? [S스토리-고사 위기 韓 영화산업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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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관객 수 팬데믹 이전의 58%
수익 악화에 영화 개봉 수도 감소
정치권 ‘OTT 홀드백’ 법제화 추진
“필요 공감” “시장 역행”… 엇갈려

극장 부양책 ‘구독형 관람권’ 거론
대형펀드 조성·규제 완화도 제기
근본 문제는 콘텐츠 경쟁력 약화
“볼만한 영화 만드는게 가장 중요”

올해 초 불어닥친 ‘왕과 사는 남자’ 열풍으로 극장가에 모처럼 온기가 돌았다. 그러나 회복을 말하기엔 이르다. 올해 1분기(1∼3월) 극장 관객 수는 약 3190만명. 2024년(3091만명), 2025년(2082만명) 1분기보다 늘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5507만명)의 약 58% 수준에 머물러 있다.

흥행작 뒤편의 그림자도 짙다. 1위 작품에만 관객이 몰리는 흥행 양극화가 고착되는 양상이다. ‘왕과 사는 남자’와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한 영화 ‘휴민트’는 극장 개봉 50일 만인 지난 1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순제작비 약 235억원이 투입된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약 400만명)의 절반에 못 미치는 198만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이동해 손실을 보전하는 경로를 밟았다. 이후 넷플릭스 공개 5일 만에 비영어 영화 부문 1위 올랐다.

◆홀드백, 해법인가 규제인가

‘휴민트’ 사례에서 보듯 극장 성적에 따라 2차 윈도 유통 전략을 달리하는 것은 업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작품별로 ‘최적의 출구’를 찾는 자율적 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홀드백(독점적 1차 시장으로 영화관의 지위를 보장하는 개봉후 유예기간)’ 법제화 카드를 꺼냈다. 이는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된 뒤 일정 기간이 지나야 OTT 등 다른 플랫폼에서 공개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은 홀드백 기간을 ‘극장 상영 종료 후 6개월 이후’로 명시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을,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홀드백을 법제화하되 기간을 대통령령에 위임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각각 지난해 9월, 11월 발의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신년 기자회견에서 관련 제도를 언급했다.

업계는 영화 유통의 상생 수익구조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홀드백 법제화를 두고는 극장과 배급사·제작사의 의견이 엇갈린다. 이화배 배급사연대 대표는 “홀드백 법제화로 영화 유통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과 다른 판타지”라며 “영화 규모와 성격에 맞춘 자율 규약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3대 멀티플렉스(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사업자가 회원사로 참여한 한국영화관산업협회의 신한식 본부장은 “영비법상 홀드백은 반드시 명시되어야 한다”며 “구체적 홀드백 기간은 업계 논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정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법제화 반대 측에서는 이미 형성된 시장 질서를 법으로 묶는 것은 시장 역행적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역시 임오경 의원 안에 “홀드백 제도는 일정한 필요성이 인정되나 일률적 기간을 법률로 규정하는 방안은 국내 산업 현실과 국제적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 신중한 검토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현실적 부작용도 예상된다. 예컨대 6개월 홀드백이 법제화될 경우 극장 관람을 놓친 관객은 해당 영화를 최소 6개월간 어떤 플랫폼에서도 볼 수 없게 된다. 관객 불편뿐 아니라 제작사의 자금 회수 지연·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해외에서도 홀드백 법제화 사례는 드물다. 박스오피스 매출 기준 세계 8위 영화시장인 한국과 유사한 규모 국가 중 프랑스를 제외하면 홀드백을 법으로 강제하는 국가는 없다. 프랑스의 홀드백 제도 역시 자국 영화 보호라는 특수한 정책 환경에서 나온 예외적 모델로 평가된다.

법제화에 대한 입장과 별개로 제작·배급·상영업계 모두 한국 영화 수익 극대화를 위한 합리적 홀드백 기간 설정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그렇기에 주목받는 것이 영진위의 역할이다. 이화배 대표는 “각 배급사가 언제, 어떤 조건으로 영화를 OTT, IPTV, 케이블 채널 등에 공급하는지 현황을 종합한 후 누가 이익을 보며 누가 피해를 보는지 대화하고 조율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를 사석에서 할 수는 없다. 영진위가 주도하는 공식 협의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진위 관계자는 “극장·제작·배급·IPTV·OTT·방송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 구성을 상반기 내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화패스’ 실험, 해법 될까

홀드백과 함께 거론되는 극장 부양책이 구독형 영화관람권, 이른바 영화패스다. 관객의 가격 부담을 낮춰 극장 수요를 회복하겠다는 취지다. 영진위가 지난 2월 발간한 ‘영화콘텐츠 소비트렌드 연구’에 따르면 극장 관람 감소 이유 1위는 ‘관람비 부담’(25.1%)으로 조사됐다. 가격 장벽 완화를 위한 구독형 모델이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영화패스 도입 추진을 공식화했고, 내년 예산 반영을 목표로 구체적 방안을 극장3사 등과 협의하고 있다. 다만 문체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 모델은 없으며, 모색 단계”라고 설명했다.

관건은 제도 설계다. 정부 재정 지원 규모, 적정 구독료 산정, 영화관·배급사 간 수익 배분율 조정 등에 따라 영화패스 효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다만 해외에 참조할 만한 여러 모델이 있다. 원조 격인 프랑스는 2000년 영화 체인 UGC가 월정액·무제한 관람 형태 구독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미국 AMC·리갈·시네마크 등 주요 영화관 체인들 역시 구독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다만 프랑스와 달리 대부분은 ‘무제한’ 방식이 아닌 일·주·월별 관람 영화 편수 제한 방식을 택한다.

문체부 관계자는 “무제한 방식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일정 기간 동안 일정 횟수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영화관 업계의 의견과 일치한다. 신 본부장은 “일명 슬세권, 슬리퍼를 끌고 나갈 거리에 영화관이 있는 우리나라 상권 구조상 무제한 패스 방식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프랑스 등 영화관 구독제 프로그램을 연구해 온 노철환 인하대 연극영화과 교수는 “미국과 유사한 형태의 영화관 구독제를 도입한다면, 현재 국내 멀티플렉스의 관람료를 고려할 때 월정액 2만원 수준, 주 1회 이상 관람 가능한 조건이면 관객에게 매력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이상으로 횟수 제한이 과도하면 관객들이 관심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교수는 “프랑스는 제도 도입 초기에 배급사와 영화관의 관람료 수입배분에 대한 기준이 없어 논란이 있었지만, 정부 주재로 양측이 합의해 기준 가격을 마련하며 제도가 안착했다”고 설명했다.

◆근본은 결국 ‘콘텐츠’

홀드백 법제화도, 구독형 관람권 도입도 목표는 더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모으는 데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한국 영화의 콘텐츠 경쟁력 약화를 지목하는 목소리가 크다. 제작자 A씨는 “관객이 극장을 외면하는 건 굳이 찾아가서 볼 만한 영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가장 시급한 건 많이 만들고, 잘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공급이다. 2017∼2019년 37편→40편→45편으로 증가하던 한국 상업영화(순제작비 30억원 이상) 개봉 편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지난해 30편으로 감소했다. 투자배급사가 개봉 영화에서 회수한 수익을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무너지면서 제작 기반 자체가 약화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봉한 상업영화 30편 중 손익분기점(BEP)을 넘는 작품은 6편, 2024년에는 전체 37편 중 8편에 그쳤다. 이로 인해 대다수 제작사는 차기작을 기획·개발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수익이 악화하니 투자자는 영화 투자에 보수적으로 돌아섰고, 투자배급사는 새로운 영화 기획을 주저하게 되고, 기획·개발 투자가 축소되니 다시 경쟁력 있는 작품 부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영진위가 지난해 시작한 것이 중예산 영화 제작지원 사업이다. 영진위는 위축된 투자·제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중예산 영화(순제작비 2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 장편 실사 극영화)를 대상으로 지원사업을 지난해부터 시행했다. 올해는 변영주 감독의 ‘당신의 과녁’, 남동협 감독의 ‘정원사들’, 민용근 감독의 ‘투피스’ 등 16편에 편당 8억∼23억원씩, 총 200억원을 지원한다. 이 가운데는 장편영화·OTT 시리즈물 연출 경력이 1편 이하인 신인 감독 작품도 10편 포함돼 상업영화 라인업 확대는 물론 신진 인력 양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의 한 영화관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의 한 영화관의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지원 규모가 말라버린 영화 투자 파이프에 마중물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독 B씨는 “지원금은 순제작비의 극히 일부이니 프로젝트 전체를 성사시키려면 나머지 자금 조달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솔직히 만만치 않다”며 “지원금 비중이 지금보다 확대되거나 배급·개봉 지원이 병행되지 않으면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책금융을 통한 영화 투자 확대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등 13개 단체가 참여한 영화단체연대회의는 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 도입과 대형 펀드 조성 등 영화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을 제안했다. 이 자리에는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양우석 감독, 박관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부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모태펀드 출자를 통해 영화 펀드가 조성되고 있지만 그 규모가 너무 작다”며 “상업 영화 평균 제작비가 100억원에 육박하는 현실을 고려해 최소 1000억원대 펀드가 여러 개 조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줄’의 볼륨을 키우고, 정부가 앵커 출자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투자 규제 완화 필요성도 제기된다. 연대회의는 “모태펀드 출자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일반투자자(LP) 유치를 하지 못해 펀드 조성에 실패하는 상황이 지난해 숱하게 벌어졌다”며 “일반 기업 은행권이 LP로도 참여해 펀드를 완성할 수 있도록 출자자에게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등 투자 유인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