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 관계가 또다시 격랑에 휩싸이는 모양새다.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이 평화헌법의 상징이었던 살상무기 수출 금지 족쇄를 70여년 만에 완전히 풀어헤친 가운데 일본 구축함이 대만해협을 통과하며 중국의 역린을 건드렸다. 중국은 이를 ‘신형 군국주의의 망동’으로 규정하고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투입하며 맞불을 놨다. 동북아의 긴장 수위가 단순한 대치를 넘어 실질적인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내포한 ‘화약고’로 변모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이 이번 사태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이카즈치함의 통과 시점 때문이다. 일본이 대만해협 통과를 강행한 4월17일은 1895년 청일전쟁의 패배로 대만을 일본에 강제 할양했던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일이다. 양국 대표 이홍장과 이토 히로부미가 체결한 이 조약은 중국에 ‘치욕의 세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당시 청나라는 랴오둥반도와 대만, 펑후제도를 일본에 넘겨줘야 했다. 이 같은 역사에 비춰 보면 중국인들에게 대만은 단순한 섬이 아니라 반드시 회복해야 할 자존심의 상징일 수도 있다.
중국에서는 일본이 의도적으로 이 날짜를 선택해 중국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일본 군국주의 잔당들이 침략의 역사를 노골적으로 조롱한 도발”이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오늘날의 중국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은) 131년 전의 약하고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럴 정도로 최근 일본의 행보는 거침없다. 일본 정부는 지난 21일 각의(국무회의)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방위 장비의 수출 규정을 정한 ‘방위 장비 이전 3원칙’과 그 운용 지침을 개정하며 살상 능력을 갖춘 완제품 무기 수출의 길을 완전히 열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4년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을 도입하며 빗장을 푼 데 이어 이제는 사실상 전후 평화주의를 지탱하던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뜨린 셈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보내며 우익 결집에 나섰고, 내년 봄까지 자위대 명기를 골자로 한 개헌안의 윤곽을 잡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일본판 중앙정보국(CIA)인 ‘국가정보국’ 신설까지 추진하며 전쟁 가능 국가로의 탈바꿈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물리적 행동으로 증명했다. 중국군은 랴오닝함을 4개월 만에 대만해협에 전격 투입했다. 대만 국방부가 공개한 사진 속 랴오닝함 갑판 위에는 함재기 8대와 헬리콥터 3대가 출격 대기 상태로 정렬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사일 구축함 바오터우함을 일본 오키나와 인근 수로를 통해 서태평양으로 진출시키는 한편, 필리핀 루손섬 인근 해역에서는 실사격 훈련을 강행했다. 또 중국군 해군은 최근 상하이에서 출항한 차세대 강습상륙함 쓰촨함을 남중국해로 보내 실전 훈련을 하기도 했다. 이는 일본과 미국, 필리핀이 주도하는 다국적 연합훈련 ‘발리카탄’에 대한 정면 대응이다.
중국 외교부는 일본의 무기 수출 완화와 전쟁 가능 국가화를 향해 “어떻게 평화 국가를 자처할 수 있느냐”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이 ‘전쟁 기계’를 다시 가동해 전쟁을 수출하려 한다”며 고강도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중국 군사 전문가들 역시 “시모노세키 조약의 망령을 불러낸 일본의 군사적 광포를 단호히 저지해야 한다”며 항공모함 전력의 서태평양 상시 투입과 전략적 압박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군사개입’ 시사 발언으로 촉발된 중·일 간 갈등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더욱 깊어졌다. 일본은 동맹국 연대 등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중국은 이를 주권 침해와 역사의 모독이라는 관점에서 대응하고 있다. 131년 전 빼앗겼던 대만을 다시는 잃지 않겠다는 중국의 집념과 전후 질서를 깨고 재무장의 길로 들어선 일본의 욕망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일본의 재무장 가속화와 중국의 항모 전력 투입이 맞물리며 동북아의 평화 질서는 중대한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