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진 날씨 속에 경북 청도 산자락의 공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햇살이 축사 지붕 위로 내려앉고 짚과 사료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가운데, 경기를 하루 앞둔 부흥농장은 잔잔한 긴장감에 싸여 있었다. 이곳에서는 11마리의 싸움소가 사육되고 있으며, 소들은 한가롭게 되새김질을 이어가고 있었다. 출전을 앞둔 토리는 이미 청도 소싸움장으로 옮겨져 대기 중이었다.
부흥농장에서 2년째 소를 돌보고 있는 김채현씨는 축사를 오가며 다른 소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경기를 앞둔 소들은 자극을 줄이고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사료를 배합하며 먹이 상태까지 세심하게 살폈다. 건초와 곡물, 영양제 그리고 소금을 섞은 사료는 하루 두 차례 나눠 주며, 소마다 상태에 따라 비율을 달리한다. “먹는 양과 속도만 봐도 컨디션을 알 수 있습니다.”
농장 안에서는 다음 주 출정 예정인 ‘보답’이라는 소와의 교감도 이어진다. 김씨는 보답이를 타고 농장 내부를 천천히 돌며 호흡을 맞춘다. 찐 고구마를 함께 나눠 먹는 시간은 자연스러운 교감의 순간이다. 이후 보답이와 함께 주변을 걷는 산책을 통해 외부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돕는다. 보답이가 먼저 다가와 몸을 기대는 순간마다 김씨는 자연스럽게 손을 얹으며 반응한다. 말은 없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쌓여간다.
소를 키우는 일은 체력 소모가 큰 작업이다. 특히 사료를 나르고 축사를 관리하는 일은 힘이 많이 들어 쉽지 않다. 김씨는 “처음에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면서도 “주변에서 다른 여성들보다 힘이 좋은 편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며 웃었다. 이어 “그래도 결국 버티게 하는 건 소를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청도 소싸움은 사람이 개입하지 않고 소와 소가 힘과 기질로 승부를 가르는 전통 경기다. 오랜 사육 경험이 바탕이 되는 이 문화는 지역 대표 관광 자원으로 자리 잡으며, 경기 때마다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다음 날 소싸움장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토리가 등장하자 시선이 집중됐지만, 경기는 예상과 달랐다. 토리는 상대를 마주하자 머뭇거리다 이내 등을 돌리고 물러섰고, 결국 싸움을 이어가지 못한 채 승부가 갈렸다.
경기 후 김씨는 “오늘은 토리가 제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는 담담한 표정을 보였다. 이후 농장으로 돌아온 그는 소들을 돌보며 다시 일상을 이어갔다.
“잘 못 싸워도 괜찮다. 다치지만 않으면 된다.”
김씨에게 소는 단순한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며 감정을 나누는 존재이자, 스스로를 지탱하게 하는 이유다. 그는 “힘들어도 소들을 보면 다시 힘이 난다”고 말했다. 11마리 싸움소와 함께하는 그의 하루는 오늘도 그렇게, 애정 어린 손길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