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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때 태어난 아이들이 국회 앞에 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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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제대로 된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하라!”

 

지난 6일 생명안전기본법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하루 앞두고 초등학생 12명이 국회 앞에 섰다. 이들은 자신의 몸집만 한 팻말을 든 채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국회의원과 국회 직원, 집회 참가자들로 붐비는 국회 앞에서 나란히 선 초등학생들의 모습은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볍씨학교 학생들과 교사 이희연(39)씨가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선 모습. 변세현 기자.
볍씨학교 학생들과 교사 이희연(39)씨가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선 모습. 변세현 기자.

이들은 경기 광명시 대안학교인 ‘볍씨학교’에 다니는 초등학교 4~6학년 학생들이다. 아이들을 인솔한 교사 이희연(39)씨는 10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이 통과되기 전, 한 번은 나가보고 싶다’는 아이들의 제안으로 현장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국가가 보장해야 할 권리로 명문화한 법이다. 안전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생명·신체·재산을 보호받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인 ‘안전권’을 명시했고,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목격자 등 관련자를 ‘피해자’로 규정해 이들의 권리를 보장할 법적 근거도 담았다.

 

이씨는 이번 피케팅이 교사가 아닌 아이들의 주도로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3년 전 학생들과 국회에서 열린 생명안전기본법 입법 토론회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참여했던 선배들의 동생들이 지금 같은 반에 있다”며 “이번에 법이 통과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 전에 한 번은 나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나누며 피케팅을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재난과 참사라는 주제가 아이들에게 너무 무겁고 어렵지는 않았을까. 이씨는 그런 걱정은 기우에 가까웠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세월호 참사와 제주항공 참사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며 “과거 토론회 자료를 펼쳐보며 ‘이게 무슨 내용일까’ 함께 고민하고 읽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회 입구에 선 아이들을 향해 따뜻한 응원을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이씨는 “배지를 달고 계신 분이 ‘꼭 통과시킬게’라고 외치고 가셨다”고 전했다. 다만 모든 반응이 따뜻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씨는 “지나가던 시민분이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를 하느냐’고 말했을 때는 아이들도 많이 당황했다”며 “세월호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또 다른 참사가 발생했을 때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해 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볍씨학교 학생들은 광명시에서 열리는 주민참여예산제도나 ‘광명시민 500인 원탁토론회’ 등에도 참여해왔다. 이씨는 “민주시민 교육은 정치 교육과 떨어질 수 없다고 본다”며 “아이들이 때로는 예산제도를 통해, 때로는 시위를 통해 국가가 보장하는 권리를 활용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숙원이기도 한 생명안전기본법은 참사 발생 12년 만인 올해 5월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 통과 소식이 전해진 뒤 아이들은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이씨는 “그날 저녁 학교 회의가 있었는데, 몇몇 아이들이 소식을 듣고 복도에서 소리를 질렀다”며 “아이들이 ‘우리가 같이 목소리를 내고 그다음 날 법이 통과돼 더 기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볍씨학교 학생들이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을 향해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및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희연씨 제공.
볍씨학교 학생들이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을 향해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및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희연씨 제공.

동시에 아이들의 질문은 곧 다음 단계로 향했다. “그러면 끝이냐”, “언제 시작되냐”, “시행령은 또 만들어야 하느냐”는 물음이었다. 이씨는 “법이 만들어졌다고 바로 모든 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구멍을 메우기 위한 시행령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며 “어떤 후속 조치가 필요한지 함께 더 찾아보기로 했다. 저도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웃었다.

 

이씨는 올해 아이들과 함께 세월호 기억식을 찾았다. 학생 중 6학년 아이들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참사 당일의 기억은 없지만, 연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었다. 이씨는 “아이들과 함께 ‘이 언니는 나랑 좋아하는 캐릭터가 똑같았어’, ‘이 오빠도 나처럼 요리사가 꿈이었대’라는 이야기를 나눴다”며 “돌아가신 분들이 얼마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는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참사 12년 만에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법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 6개월 뒤 시행된다. 그 사이 구체적인 집행 기준과 시행령 마련, 예산 확보 방안 등이 뒤따라야 한다. 이씨는 “끝이 아닌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에 통과된 법이 제가 만난 아이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법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