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아 출신의 작가 카렐 차페크(1890∼1938)는 ‘정원 가꾸는 사람의 열두 달’에서 정원사를 자연을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그 질서에 자신을 맞추어 기다리는 사람으로 그린다. 정원사의 시간은 뿌리가 흙에 안착하고 마른 줄기에서 기어이 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인내로 채워진다.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에서 출발하지만, 그는 우아한 관찰자라기보다 무릎을 꿇고 흙에 뒤덮여 작은 것들을 돌보는 존재다. 자연에 온몸을 내던지며 기후의 변덕을 견뎌낸 뒤, 마침내 고개를 든 한 떨기 꽃이나 새순에서 그는 우주를 발견한다.
서울 연남동 챕터투에서 열린 박선민 개인전 ‘페일 핑크 유니버스(Pale Pink Universe)’(2026. 3. 28∼5. 8)를 보며 지난 세기의 이 열정적인 정원사를 생각했다. 그간 일상의 미세한 틈새나 생태계의 작은 존재들에 예리한 시선을 기울여온 작가는, 그 안에 축적된 시간과 감각을 탐색하며 예술을 세상과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이자 태도로 견지해 왔다. 그 과정에서 제어할 수 없는 자연의 리듬이나 예기치 못한 변수와 균열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과 인식을 생성하는 계기로 수용된다.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 프레스코발디 가문이 기획한 현대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가 토스카나 몬탈치노에 위치한 와이너리이자 성지(城地)인 ‘카스텔 지오콘도’에 머물며 제작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와인이라는 문화적 결정체에서 출발하는 전시는 그것을 매개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시간이 관계 맺는 방식을 섬세하게 추적한다.
◆응축된 세계
전시와 동명인 영상 ‘페일 핑크 유니버스(Pale Pink Universe)’는 와인 한 방울에서 시작한다. 액체 속 미세한 입자들은 보석이나 세포, 별빛을 닮은 모습으로 군무를 펼치거나, 서로를 끌어당기며 유영한다. 카메라의 시선이 멀어지자, 액체 방울들은 이내 행성처럼 자리하며 광활한 우주와도 같은 풍경을 그려낸다.
그 위에 납작하게 얹히는 꽃 드로잉들은 계속해서 인식을 뒤흔든다. 성의 건축 장식에서 추출된 형상들은 달팽이나 뱀, 혹은 이름 모를 바다 생물처럼 추상적인 파편으로 등장하다가 점점 익숙한 꽃의 모습으로 안착한다. 이러한 형상의 지연은 대상을 명명하고 소유하려는 인간의 관성적인 시선에 제동을 거는 동시에, 생명의 근원적 지점에서는 종의 경계마저 이토록 유동적임을 시사한다.
꽃의 시간은 씨앗의 시간으로 역행한다.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 형상은 꽃이 영글어 낸 열매 같기도, 뜨겁게 맥동하는 심장의 모양 같기도 하다. 이윽고 확대된 포도 씨앗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한다. 시계의 초침이 된 씨앗. 꽃이 수분(受粉)이라는 목적을 위해 피어난 찬란한 수사라면, 씨앗은 그 모든 열망이 성취되어 다음 생을 기다리는 거대한 시공간의 결정(結晶)이다. 붙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선회하는 씨앗의 움직임은 시간의 춤이 되어, 그 안에 새겨진 아득한 세월과 토양의 기억을 불러낸다.
작품을 위해 작곡된 보얀 불레티치의 음악과 작가가 직접 낭독한 중세 시인 디노 프레스코발디(1271∼1316)의 시는 씨앗의 움직임 위에 서사적 층위를 덧입힌다. ‘사랑이 밝은 빛처럼 세상을 가득 채우다가 일순간 사라져 삶을 겨누는 화살이 된다’는 내용의 시는 찬란했던 꽃의 시절을 뒤로하고 남겨진 씨앗의 마음이 되어 낮게 울려 퍼진다. 고독과 상실을 제 몸 안에 화살처럼 박아 넣은 채, 씨앗은 회전하며 점점 멀어지다 결국 하나의 점으로 수렴된다. 그것은 한 세계를 끝맺는 마침표이자, 새로운 세계를 예고하는 시작점이다.
◆관찰이 사랑이 될 때
씨앗의 시간이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 박선민의 작업 역시 물성의 변성을 거치며 서로가 서로의 씨앗이 된다. 함께 전시되는 드로잉과 조형물들은 영상 속 형상들이 각기 다른 물성을 입고 발현된 존재들이다. 프레스코 벽화의 먼지 속 멈춰 있던 꽃은 드로잉으로 소생하고, 조각으로 이어지며,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로 태어난다.
브론즈 조각은 작가가 현지에 머물며 써 내려 간 시 ‘22송이 꽃다발’에서 출발한다. ‘꽃’이라는 단어가 22번 등장하는 이 ‘텍스트 꽃다발’은 “꽃이 핀다”라는 문장에서 시작해, 꽃을 보고, 곁에 두고, 그리고, 그 그림을 조각으로 만들고, 그 조각 꽃의 그림자를 보다 마침내 자신이 꽃이 되어 버리는 과정을 담는다.
대상을 오래 바라보다 끝내 자신이 대상이 되어버리는 상태. 작가는 이에 대해 ‘그것은 내 안에 깊이 넣고 나는 저 멀리 둔다’고 말한다. 대상이 자신의 안으로 깊숙이 침투해 올 때, 비로소 자아에서 벗어나 세계를 투명하게 바라볼 객관의 거리를 확보하게 된다는 역설이다.
이때, 관찰은 인식을 넘어 ‘사랑의 형식’이 되고, 사랑은 물질이 된다. 박선민의 이미지는 따라서 대상과 나를 분리할 수 없을 만큼 지극히 사랑한 끝에 남겨진 감각의 흔적이다. 꽃이 물성을 갈아입으며 변모하는 과정은,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에서 시작되지만 끝내 자신이 자연의 법칙에 스며들고마는 고독한 정원사의 시간을 닮아 있다. 결국 전시는 대상을 향한 사랑이 물질의 형태를 입게 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숭고한 연금술의 현장이다.
◆기쁨이라는 태도
무언가를 오래, 그리고 깊이 관찰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사랑이자 경의이지만, 박선민의 작업에서 사랑은 대상을 지독하게 내면화한 뒤 자신을 먼 곳으로 보내는 ‘관계의 미학’에 가깝다. 와인 한 방울에서 발견한 우주와 포도 한 알에서 건져 올린 씨앗의 춤, 꽃 한 송이에서 감지한 인간의 열망은 모두 자아를 비워낸 시선의 끝에서 드러난다.
작가가 머문 카스텔 ‘지오콘도’가 ‘기쁨’을 의미한다는 사실도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와인은 인간이 자연의 지혜를 빌리고 자연적 질서에 동화되어 얻어낸 기쁨이다. 그 기쁨은 아름다움을 향한 찬미에서 비롯된다. 박선민의 작업에서도 기쁨은 어떠한 결괏값이라기보다 세계를 수용하고 몰입하는 태도 속에 자리한다.
작은 존재 속에 숨겨진 자연의 질서는 사랑이라는 관찰을 통해 드러나고, 그 드러남은 예술이 된다. 박선민의 작업은 세상의 크고 작은 리듬에 자신의 감각을 기민하게 맞추어가는 조응의 과정이자, 거대한 자연 속 존재의 비의(秘義)를 노래하는 시적 응시의 기록이다.
신리사 미술사·학고재 기획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