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 글 쓰는 게 업인 그에게 작업이란 글 쓰는 종류의 일이었다. 문득 유튜브를 보다가 믿을 수 없는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비상계엄 선포”.
비상계엄 선포라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집에서 글을 쓰고 있던 그는 그때까지 바깥 상황 전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게 뭐지. 서둘러 유튜브와 포털을 검색했다. 곧 현직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아, 이거 진짜구나.
2024년 12월3일 그날 밤, 소설가 정찬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니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다. 국회가 정부의 비상계엄령을 해제 의결하고 대통령이 이것을 마지못해 승인할 때까지. 이 사이, 용기 있는 시민들은 국회 앞으로 달려가 외쳤다. “비상계엄 해제하라”고, “민주주의 수호하자”고.
그날 밤 계엄을 막기 위해 국회로 달려가는 시민들을 보고 문득 1980년 계엄에 맞서던 광주 시민들을 떠올렸다. 44년 전 광주가 소환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역사의 신비였다”며 “그 신비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연대”였다고, 그는 기억했다.
“1980년 5월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역시 친위 쿠데타였습니다. 사적인 욕망을 위해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한 친위 쿠데타. 그 친위 쿠데타에 유일하게 저항한 도시가 바로 광주였습니다.”
정 작가는 12·3비상계엄 사태와 전개를 지켜보면서 문득 1980년 광주를 그린 자신의 2002년작 ‘광야’를 떠올렸고, 작품을 새롭게 다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5·18광주민주화항쟁은 글을 배운 사람이라면 대부분 압니다. 5·18이 어떻게 해서 시작된 것인지는 대체로 알지만, 사건이 어떻게 전개됐고 어떻게 끝났는지는 제대로 아는 사람은 또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사람이 제대로 잘 모르는 5·18을 지식이 아닌 감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소설가 정찬이 자신의 작품 ‘광야’를 바탕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총체적인 시각에서 사실적으로 복원한 장편소설 ‘그들이 있었던 곳’(말하는 나무)을 들고 돌아왔다.
“청년들은 도청 광장으로부터 300여m 떨어진 길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계엄령 해제하라!’ ‘전두환 물러가라!’ 그들의 몸짓과 펄럭이는 태극기는 텅 빈 길 위에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생명으로 충만한 세계였다. 생명의 원천은 자유였다. … 타타타타앙. 귀를 찢는 총소리와 함께 여섯 명의 청년이 동시에 쓰러졌다. 놀라움과 탄식 속에 시민들의 달려 나와 그들을 옮겼다. 춤의 공간이 비기가 무섭게 청년들이 또 뛰어나와 피 묻은 태극기를 흔들었다.”(76쪽)
화창한 일요일의 평화로운 거리 묘사에서 시작하는 소설은 두 번째 문단부터 곧바로 1980년 광주의 현장 속으로 독자를 이끌고 간다. 치밀한 자료 조사에 바탕으로 날짜별 시간대별 중요 사건들이 다채로운 인물의 시선 속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면서 5월 광주가 되살아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신군부의 가공할 폭력과 불의를 마주하고 고통스러워하지만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다. ‘해방 광주’의 등불을 지키고자 하는 항쟁 지도부의 태민, 항쟁을 통해 자유를 느끼는 기층민 출신의 시민군 선욱, 계엄 작전 과정에서 내면의 변화를 겪게 되는 공수특전단 소속의 선우, 광주의 고통을 십자가의 고통으로 이해한 도예섭 신부, 광주의 진실을 캐내려는 외신 기자 머튼….
우리는 작품을 통해 5월 광주의 전체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조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광주 시민들이 겪었던 영혼의 상처도 만날 수 있다. 특히 비극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마지막 믿음과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그들’의 진심도.
작가 정찬은 왜 또다시 1980년 광주와 광주 시민들을 그려야만 했을까. 그가 그린 5월 광주는 어떤 모습일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정 작가를 지난 7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2002년작 ‘광야’를 바탕으로 새롭게 썼다고 했는데.
“‘광야’는 기본적으로 1989년 베를린장벽이 붕괴하는 현장에서 9년 전인 5월 광주를 회상하는 구조로 이뤄진 작품이다. 이번 작품을 쓸 때는 ‘광야’의 앞뒤에 자리한 베를린장벽 붕괴 이야기를 잘라버린 다음 5월 광주의 시작부터 전개, 끝까지 총체적이고 명료하게 보여주려 했다. 앞뒤의 회상 부문을 빼고 5·18을 전체로 그리려다 보니 시간과 공간, 감각의 틈이 생기게 돼 그 틈을 메꾸고 어긋난 이음새를 찾아 삭제와 수정, 첨가가 있었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허구의 인물은 누구인가.
“등장인물 가운데 계엄군 선우, 항쟁 지도부의 태민, 도예섭 신부, 외신 기자 머튼 등 허구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태민은 윤상원 열사를 모델로 한 것이지만, 윤상원의 행적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집어넣었기에 같은 인물이라고 볼 수는 없다. 도예섭 신부의 경우 허구의 인물이다. 외신 기자 머튼은 당시 광주에 대해 인상적인 취재를 한 기자 3명을 뒤섞고 추출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광주 시민을 잔인하게 죽이다가 회의한 뒤 도청으로 들어가 죽게 되는 계엄군 선우의 모습은 특히 놀라웠다.
“이번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로, 어떻게 보면 선우 역시 희생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12·3비상계엄 사태 때처럼 계엄군에도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마음 아파하는 군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입체적이고 총체적인 형상화를 위해선 이런 군인을 표징하는 인물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1953년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정찬은 1983년 중편소설 ‘말의 탑’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 ‘광야’, ‘골짜기에 잠든 자’, ‘발 없는 새’ 등을, 소설집 ‘기억의 강’, ‘베니스에서 죽다’, ‘새의 시선’ 등을 발표했다.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요산김정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전에는 새벽 2시에 자고 아침 9시쯤 일어났던 그는 요즘에는 밤 12시 전에 자고 오전 8시 전후에 일어난다. 일어나면 간단히 씻고 글을 읽거나 필요한 일을 한다. 오전 10시쯤 아침 겸 점심을 한다. 식사는 하루 두 끼. 이어서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하며, 유튜브나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한다. 오후가 되면 집 근처 산이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특별한 시간을 정해 놓진 않지만, 소설가 정찬은 늘 소설을 생각한다. 물론 글을 쓰기 시작하면 오전 오후가 따로 없고,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에는 “글이 나올 때까지 견”디지만. 여여한 일상 속에서도, 그는 늘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와, 인물을 붙잡으려 노력한다. 광주의 진실을 알고 싶었던 기자 머튼과,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도청으로 들어가려는 도예섭 신부도….
“‘신부님이 저지른 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지요?’ ‘칼을 든 자를 두려워했습니다.’ ‘누구든지 두려워하기 마련입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낸 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갑옷을 입지 않았음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갑옷을 입고도 두려워했습니다.’ ‘하느님은 용서하시는 분 아닙니까?’ ‘그분은 저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스스로 벌을 받으려 하십니까?’ ‘도청으로 가는 것은 벌을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도청이 그리스도의 집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집이야말로 사제가 가야 할 곳이죠.’”(224∼22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