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원자력의학원(의학원)은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민의 숙원을 반영해 2010년 부산에 설립된 공공의료기관이다. 방사선의 의학적 이용에 대한 연구와 특화된 암 치료, 동남권 지역주민의 의료서비스 및 방사선비상진료를 선도하고 있다. 종합병원과 암센터 기능에 임상연구를 위한 연구센터까지 갖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유일한 병원으로 관절질환·심장질환·뇌질환의 골든타임을 사수하고, 소아청소년과 진료 강화 등을 통해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에 기여하고 있다.
◆비수도권 최초 방사성의약품 치료
13일 의학원에 따르면 방사성의약품 치료 분야는 세계적으로 미래 전망이 밝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제약사들의 적극적인 투자로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기존 전립선암과 신경내분비종양을 넘어 유방암, 폐암 등 다양한 암종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방사성의약품 암 치료는 암세포만을 골라 치료하는 ‘유도미사일 치료’로 불리며 기존 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제시하는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부작용이 적어 고령자들도 안전하게 적용할 수 있어 향후 수십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의학원은 비수도권 최초로 전립선암 환자를 대상으로 방사성의약품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치료제는 스위스 제약업체 노바티스의 ‘플루빅토’로 2022년과 2024년 각각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대한민국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았으나, 그동안 수도권 일부 병원에서만 치료받을 수 있었다.
전립선암은 조직검사와 영상검사로 병기를 확인한 뒤 수술과 방사선, 항암·표적·면역치료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이에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방사성의약품 치료다.
방사성의약품은 주사 후 혈액을 따라 이동하며 암세포에 집중되도록 설계돼 암세포가 모인 곳에서 방사선을 방출해 치료한다. 암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해도 다발성 전이나 광범위한 전이에 대응할 수 있어 유도미사일 치료라고 불린다.
플루빅토는 전립선암 세포 표면의 전립선특이막항원(PSMA)에 결합해 루테슘-177이 방출하는 베타선으로 암세포를 사멸시킨다. 국제 임상시험에서도 전체 생존율과 무진행 생존율을 유의미하게 높인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높은 비용이 환자 치료에 장애가 되고 있다. 비수도권에서 치료 도입이 늦어진 이유는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SMA PET)/컴퓨터 단층촬영(CT) 영상검사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에서도 F-18 기반 PSMA PET/CT 검사가 가능해지면서 치료 가능성이 커졌다.
방사성의약품 치료에는 플루빅토 이전에도 신경내분비종양의 치료에 사용이 허가된 루타테라가 있었다. 루타테라는 신경내분비종양에서 발현되는 소마토스타틴 수용체에 결합해 작용하며, 2022년부터 보험이 적용돼 환자 부담이 크게 줄었다. 의학원은 첨단 방사성의약품 치료를 비수도권에 선도적으로 도입해 지역 환자들에게 최신 치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암 냉동제거술로 환자들에 새 희망
의학원은 암 냉동제거술로 암환자들의 생존율과 삶의 질을 동시에 향상하고 있다. 암의 냉동제거술은 약 20년 전부터 해외에서 활발히 시행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최근에서야 수도권 병원에서부터 차츰 도입되고 있는 암 치료법이다.
냉동제거술은 폐기능이 나빠 수술이 어렵거나 항암 치료 및 방사선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를 비롯해 다른 치료 후 재발한 환자와 전이암 환자가 통증 없이 편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치료 대상 암은 폐암과 신장암·간암·뼈암 등이며, 초기 폐암이지만 심폐기능이 저하되거나 노화로 인해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와 3㎝ 이하의 조기 폐암·간암·신장암에서 높은 치료 성공률을 보인다. 특히 뼈 전이암의 통증 완화에 효과가 좋아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냉동제거술은 아주 얇은 치료바늘을 종양에 찔러 넣고 가스를 사용해 극저온으로 영하 40도 이하까지 떨어뜨려 암세포를 얼려 괴사시키는 치료법이다. 냉동 자체가 자연 마취 효과가 있어 통증이 매우 작아 국소마취만으로 치료가 가능하고 회복이 빠르다. CT나 초음파 등 영상장비로 모든 과정을 확인하면서 시술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높고, 시술시간은 1∼2시간 걸린다.
최현욱 의학원 영상의학과 주임과장은 “고주파나 극초단파를 이용한 암 치료법이 상당한 통증을 수반하는 데 비해 암의 냉동제거술은 통증이 거의 없고 치료범위를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어 종양 근처에 있는 정상조직 손상을 최소화하고 합병증 비율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사선의학 ‘생산·연구·임상’ 하나로
2010년 부산 기장군 동남권방사선의과학산업단지에 최초로 입주한 의학원은 2027년부터 서울대 중입자치료센터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수출용 연구로, 동위원소활용연구센터와 본격적인 협력체계를 구축·운영한다.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을 위해 수출용 연구로에서 생산된 방사성동위원소는 동위원소활용연구센터에서 기초 연구 및 방사성의약품 개발에 활용하고, 의학원에서 임상 적용과 신약 개발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의학원을 중심으로 ‘생산-연구-임상’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방사선의과학산업단지 내 방사선 의학 연구 생태계가 완성되는 구조다.
특히 암 진단부터 치료, 연구, 임상까지 전 과정을 하나로 통합한 의료·연구 체계를 구축하고, 동위원소 기반 진단에서 중입자 및 방사성의약품 치료, 연구센터의 신치료 기술 개발, 의료기관의 임상 적용까지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의학원은 또 방사선비상진료센터 운영을 통해 고리원전 주변 주민들을 대상으로 방사선 안전 교육과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방사선영향클리닉을 통해 피폭 의심자에 대한 상담 및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국내 암 경험자는 270만명을 넘었습니다. 암은 단순히 치료로 끝나는 질환이 아니라 예방부터 치료, 재활, 추적관리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관리가 필요한 질환입니다.”
정승필(사진)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원장은 “기존 암 진료가 치료 단계에 집중돼 있었다면, 앞으로는 후유증 관리와 재발 감시, 삶의 질 유지까지 포함하는 통합적인 관리 체계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암 환자의 고령화로 인해 암이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할 만성질환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정 원장 설명이다. 그는 “환자가 원할 경우 수도권에서 수술을 받더라도 지역에서 진단부터 보조 치료와 사후관리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13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앞으로 고령화가 심화되는 만큼, 노인의 기준과 의료 접근 방식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면서 “환자의 상태에 따라 수도권 진료가 필요한 경우 동남권 전문가의 판단을 통해 적절히 연계하고, 반대로 지역에서 충분히 가능한 치료는 지역 내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사선치료나 항암치료는 이미 표준화된 치료가 확립된 분야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이동보다는 지역에서 치료와 관리를 받는 것이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 원장은 “중입자치료를 매개로 서울대병원과 협력 진료 모델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등 의료기관과의 협진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면서 “지역 간 의료 정보 단절 문제를 해소하고, 응급 상황에서 환자 정보를 신속히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암 치료와 관련해 “환자 스스로 처방전 등을 기록·관리해 의료진과 공유하는 등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환경이 함께 마련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의학원은 지난해 말 부산시, 기장군,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과 양성자치료센터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본격 양성자치료센터 구축에 돌입했다. 정부 출연금과 진료 수익, 지자체 지원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매칭형 포트폴리오’를 통해 양성자치료센터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정 원장은 “양성자치료기는 주변 정상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암세포만 사멸시키는 최첨단 치료 장비”라며 “양성자치료센터를 구축하고 중입자치료기와 연구용 원자로 등을 연계해 방사선 의학 생태계를 완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