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옥상으로 따라와”는 없었다… 우리가 명대사를 다르게 기억하는 이유

입력 :
수정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이른바 '만델라 효과'…잘못된 기억 퍼져 사실처럼 자리 잡아
대중문화 속 상대적으로 자주 보고돼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권상우의 “옥상으로 따라와”, 드라마 ‘SKY 캐슬’ 김서형의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와 드라마 속 명대사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배우들이 한 대사는 달랐다. 각각 원대사는 “옥상으로 올라와”, “어머니,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예서의 성적은 전적으로 저한테 맡기시고…”로, 그간 널리 알려진 대사와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왜 배우들의 대사를 다르게 기억하고 있을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인공 현수(권상우 분) 모습. 네이버 제공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인공 현수(권상우 분) 모습. 네이버 제공

◆ ‘만델라 효과’로 알려진 ‘집단적 오기억’

 

우리가 실제 배우들이 읊었던 원대사와 다르게 명대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만델라 효과’와 관련이 있다. 만델라 효과란 2009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제8대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의 투병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만델라는 1980년대에 이미 교도소 수감 중 옥사한 것 아니었나?’ 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시작된 용어다.

 

실제 만델라는 1993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에는 남아공 첫 흑인 대통령이 된다. 이후 2013년 12월에 별세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미 만델라가 훨씬 이전에 사망했다며 믿었고, 이러한 잘못된 기억이 자리잡아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사실인 정보처럼 통용되곤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만델라 효과는 ‘집단적 오기억’ 현상으로도 불린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사실의 일부 또는 전부를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는 현상이다. 진실되거나 실존했던 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거짓된 기억을 공유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 ‘만델라 효과’의 원인은 무엇일까?

 

만델라 효과의 원인은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이와 관련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2022년 말 당시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 조교수이자 신경과학자로 재직 중이던 윌마 베인브리지와 심리·뇌과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디파스리 프라사드는 만델라 효과와 관련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실제 많은 사람들이 유명한 아이콘이나 캐릭터 등에 대해 확신에 찬 잘못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문자나 인터넷 이미지를 볼 때 ‘세부사항’까지 꼼꼼히 보지 않기 때문에 다수가 잘못된 기억을 갖게 되는 것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연구를 진행했지만, 가설에 부합하는 연구 결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인 브리지는 2022년 연구에서 “다양한 상황에서 만델라 효과가 있지만 명확한 원인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큰 시사점”이라고 밝혔다.

 

영국 런던메트로폴리탄대학교 인지초심리학 연구자인 닐 다그널은 만델라 효과와 관련해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부정확할 수 있는지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인간이 많은 일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생각하는대로 보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뇌과학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기억은 한 지점에 저장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각 기억정보가 시냅스를 따라 분산 저장된다고 알려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정보는 사라지고, 뇌는 그 ‘빈칸’을 개연성 있는 내용으로 채워 넣는다. 이 과정에서 왜곡은 흔하게 발생한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동일 개념은 아니지만, 만델라 효과는 ‘수면자 효과’와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며 “우리가 출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 볼만하다”고 말했다. 어떤 정보가 확산될 때 정보의 출처나 근거를 확인하려는 의지보다 익숙함을 따르는 인간의 본성이 반영된 심리라는 분석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 속 은수(이영애 분)와 상우(유지태 분)의 한 장면. 네이버 제공
영화 ‘봄날은 간다’ 속 은수(이영애 분)와 상우(유지태 분)의 한 장면. 네이버 제공

◆ 대표적으로 알려진 또 다른 사례들

 

대중문화 속 만델라 효과와 관련된 사례들은 흔하게 찾을 수 있다.

방송인 신동엽의 유튜브 채널 ‘짠한형 신동엽’에 출연한 이영애. 유튜브 ‘짠한형 신동엽’ 영상 캡처
방송인 신동엽의 유튜브 채널 ‘짠한형 신동엽’에 출연한 이영애. 유튜브 ‘짠한형 신동엽’ 영상 캡처

영화 ‘봄날은 간다’ 속 배우 이영애의 원대사 “라면 먹을래요?”는 유튜브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 등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실제 대사보다 캐릭터 이미지와 장면의 인상이 우선적으로 연상되면서 다른 표현 등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 대사는 남녀 사이의 미묘한 호감과 분위기를 상징하는 극적 장치로 기능했는데, 지난해 9월 배우 이영애가 방송인 신동엽의 유튜브 채널 ‘짠한형 신동엽’ 에 출연하면서 재조명 받은 바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 2’의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 분)이 용광로에 빠지는 장면. 네이버 제공
영화 ‘터미네이터 2’의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 분)이 용광로에 빠지는 장면. 네이버 제공

같은 맥락에서 영화 ‘터미네이터 2’에서 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용광로에 빠지며 “I’ll Be Back”이라는 대사를 말했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는 해당 장면에서 “Good Bye”라고 말했다.  “I’ll Be Back”은 다른 장면에서 등장했던 대사다. 다만 용광로에 빠지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다른 장면에서 배우가 말했던 명대사와 결합되며 하나의 기억으로 합쳐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배우 조인성. MBC 영상 캡처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배우 조인성. MBC 영상 캡처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일’에서 배우 조인성이 입에 주먹을 넣으며 우는 이른바 ‘주먹 울음’을 했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그는 극 중 주먹 울음을 한 적이 없다.

 

작품 속 그는 수정(하지원 분)과 통화하며 울면서 전화기를 두 손으로 붙잡고 슬픔을 삭였다. 훗날 조인성은 한 예능 프로에서 “주먹 울음을 한 적이 없다”며 “패러디를 거치며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대표적인 명장면인 ‘스케치북 고백 장면’에서 나온 노래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All You Need Is Love’가 아니라 ‘캐롤송’이었다.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노래 ‘개똥벌레’ 가사와 관련된 내용도 흥미롭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개똥벌레 친구가 없네’로 가사를 기억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로 나뉜 가사다. 인상적인 두 가사가 합쳐져 사람들 머릿속에 기억되고 구전되면서 변형됐다고 볼 수 있다.

 

◆ 왜 대중문화에 대한 기억에서 흔하게 발생할까?

 

만델라 효과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도 나타나지만, 특히 영화·드라마·광고·유행어 등 대중문화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자주 관찰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관련해 대중문화의 소비 방식과 인간 기억의 작동 방식이 맞물린 결과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배우가 어떤 대사를 정확히 말했는지보다 어떤 분위기였는지, 특정 장면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후 기억을 되짚을 때 ‘사실에 가까운 문장’ 보다는 ‘장면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기억이 원본을 복원한다기보다는 개연성 높은 각색본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가까운 셈이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명장면 ‘스케치북 고백 장면’에서 나온 노래가 팝송 ‘All You Need Is Love’가 아니라는 점에 관한 네티즌들의 댓글. 유튜브 채널 ‘팝스리’ 영상 댓글 캡처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명장면 ‘스케치북 고백 장면’에서 나온 노래가 팝송 ‘All You Need Is Love’가 아니라는 점에 관한 네티즌들의 댓글. 유튜브 채널 ‘팝스리’ 영상 댓글 캡처

대중문화가 가진 또 다른 특징은 대체로 인용을 통해 소비된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흉내내는 식으로 온라인에서 확산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대사는 자연스럽게 짧아지고 함축된다. 설명이 필요한 호흡이 긴 문장은 탈락하고 한 문장으로 독립 가능한 표현만 살아남는다. 원대사의 맥은 살려두되, 왜곡돼 ‘밈(Meme)’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결국 ‘실제 했던 대사’보다는 ‘그 인물이 했을 법한 말’이 기억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임 교수는 “습득한 정보에 대해 ‘참고 자료(레퍼런스)’ 확인이 필요하다”며 “출처나 근거에 대해 다 함께 얘기하려는 시도가 집단적 오기억을 예방하는데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