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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이란 전쟁 작전명 ‘슬레지해머’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싸우는 영국과 미국은 사이좋은 동맹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하지만 속에선 첨예한 갈등이 벌어졌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 9월부터 전쟁 당사자였던 영국과 1941년 12월 군국주의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을 당하고 비로소 전쟁에 뛰어든 미국의 차이는 컸다. 대전 초반 독일군에 연전연패한 영국군을 미국인들은 ‘겁쟁이’라며 비웃었다. 뒤늦게 전쟁에 뛰어들어 실전 경험이 부족한 미군을 영국인들은 ‘풋내기’라고 무시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3월 7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원유 저장 시설이 공격을 받아 화염에 휩싸여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3월 7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원유 저장 시설이 공격을 받아 화염에 휩싸여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행정부는 미군, 영국군, 캐나다군 등 연합군이 신속히 독일 점령 하의 프랑스에 상륙해 유럽 대륙을 나치즘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독일을 굴복시키는 것이 핵심이라고 여겼다. 물론 영국 전시 내각도 원론적으로는 이 같은 방침에 동의했다. 문제는 상륙 작전 단행의 시점이었다. 영국이 보기에 독일 육군의 막강한 전력을 감안하면 상륙 작전은 최대한 미루는 것이 바람직했다. 그렇지 않고 상륙 작전을 밀어붙이면 영불 해협이 연합군 장병들의 피로 물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영·미 연합군이 독일 점령 하의 프랑스 침공 계획에 붙인 최초의 작전명은 ‘슬레지해머’(Sledgehammer·대형 망치)였다. 원래는 1942년 중 실행에 옮길 예정이었으나 영국의 반대로 불발에 그쳤다. 영국은 전투 경험이 부족한 미군이 바로 프랑스에 상륙해 독일군과 싸우는 것은 무리란 주장을 폈다. 그러면서 먼저 북아프리카의 독일군을 몰아내는 작전에 참여하며 실전 감각을 쌓을 것을 미국 측에 제안해 관철했다. 연합군의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은 1944년 6월에야 비로소 현실이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 방송 화면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 방송 화면 캡처

지난 2월28일 이란 공습에 돌입한 미군이 공개한 작전명은 ‘장대한 분노’(Epic Fury)였다.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은 최근 ‘장대한 분노’ 작전이 목표를 달성함과 동시에 종료했다고 선언했다. 현재 미국과 이란은 공식적으로 휴전 중이다. 그런데 미국 언론이 12일 “미국이 이란과의 휴전을 깨고 전쟁을 재개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작전명을 ‘슬레지해머’로 정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란을 2차대전 당시의 나치 독일만큼 위험한 적으로 여긴다는 뜻이 아닐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