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며 승기를 잡은 연합국들은 전후 영구적인 평화를 구축할 방안을 논의했다. 기존 국제연맹을 대체할 유엔 창설이 확정된 가운데 그 중추적 기구에 해당하는 안전보장이사회 구성이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나치 독일을 쓰러뜨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미국·영국·소련(현 러시아) 3국이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소련은 ‘이 셋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을 폈으나 미국은 중국, 영국은 프랑스를 각각 추가하고 싶어했다. 결국 안보리의 의사 결정에서 거부권(veto power)를 갖는 상임이사국은 총 5개국으로 하는 데 뜻이 모아졌다.
2차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남긴 회고록에 의하면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거부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1945년 2월 얄타 회의에서 결정됐다.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그 도입을 강력히 요구했다. 처칠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그에 따라 어떤 사안에서 상임이사국 중 단 한 나라만 반대해도 안보리는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되었다. 강대국들에게 무한대의 엄청난 특권을 부여한 셈이다. 강대국이 아닌 유엔 회원국들의 뻔히 예상되는 반발과 비난이 신경쓰였던 것일까. 처칠은 회고록에 “(거부권 도입의) 결과는 후세가 판단할 것”이라고 적었다.
오늘날 우리는 거부권의 문제점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4년 넘게 전쟁을 벌이고 있으나 유엔 안보리는 러시아에게 “무력 행사를 즉각 멈추라”고 강요하지 못한다. 상임이사국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 지구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다는 비난이 폭주했을 때 안보리는 이스라엘에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맹방인 미국의 거부권 행사 때문이다. 북한이 아무리 핵무기 개발과 탄도미사일 발사로 세계 평화를 어지럽혀도 안보리의 제재 부과는 불가능하다. 북한의 ‘뒷배’를 자처하는 중국·러시아의 거부권 행사 때문이다.
프랑스와 멕시코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거부권 행사에 제약을 가하는 내용의 유엔 총회 결의안 초안을 공동으로 마련했다. 지난 12일 프랑스 외교부는 현재까지 118개 유엔 회원국의 동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는 9월 유엔 총회 이전에 추가로 11개국의 지지를 확보해 표결에 부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129개국이면 전체 유엔 회원국의 3분의 2가 넘는 숫자다. 이는 유엔 헌장 개정 절차 착수에 필요한 정족수이기도 하다. 물론 유엔 총회에서 129개국 이상의 찬성으로 ‘거부권 행사 제한’ 안건이 통과하더라도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유엔 총회 결의안 이행도, 헌장 개정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반대하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덤 속의 처칠에게 ‘거부권 도입은 틀렸다는 것이 후세의 판단’이란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