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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北 체제 존중’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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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가 최근 발표한 1분기 국민통일여론조사에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조사는 국민 10명 중 6명, 61.6%가 정부의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지속하는 데 대해 공감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책 추진 3원칙 가운데 하나인 ‘북한 체제 인정’에는 51.6%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응답자들이 정책 추진 3원칙이 ‘북한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대북 적대행위 불추진’이란 걸 모른 채 한 답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북한 체제 존중’이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지난 3월 수립된 5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은 ‘북한 체제 존중’을 “평화공존의 남북관계 재정립을 위한 필수 전제로서 북한 체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함께 실현해 나가는 주체로 존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기본합의서(1991년)를 비롯한 기존 남북 합의의 화해와 상호존중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이라고도 했다. 합의서 1장 ‘남북화해’ 부분엔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결국 ‘체제 존중은 체제 인정·존중이다’라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조채원 외교안보부 기자
조채원 외교안보부 기자

체제 존중에는 여러 의미가 뒤섞여있다. 첫째는 법적 인정이다. 국제연합(유엔·UN) 회원국인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독립된 주권국가지만 우리 법체계는 북한을 국가도, 반국가단체도 아닌 특수관계 상대방처럼 여긴다.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이 한반도 전체를 영토로 규정하고 평화 통일을 지향한다는, 헌법 3·4조와 연결되는 이유다. 둘째는 ‘정치적 수용’이다. 북한을 협상·공존이 가능한 상대로 보느냐다. 대화와 관여를 우선시할지, 억지와 제재를 우선시할지에 대한 입장 차이가 여기 맞물려 있다. 셋째는 ‘가치적 승인’이다. 신정, 왕정 등 다양한 정치체제가 국제사회에 공존하듯 북한의 당·군·지도자 중심 권력 구조와 세습 리더십까지 수용 가능한 체제로 볼 수 있느냐는 차원의 문제다.

정부 정책이 실제로 다루는 영역은 첫째, 둘째 부분에 해당할 것이다.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고 협상 가능한 상대로 대한다는, ‘국가관계 인정’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국민이 받아들이는 ‘체제 존중’은 다를 수 있다. 협상 상대란 의미를 넘어 북한의 권력 구조와 세습 체제까지 용인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단 얘기다. 민주평통 조사에서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에는 공감하면서도 ‘북한 체제 인정’에는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배경도 여기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평통은 조사에 ‘북한 체제 인정’(41.6%)보다 ‘국가관계 인정’(52.6%) 비율이 높게 나타난 데 대해 “두 개념이 응답자에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며 “결국 개념적 혼재 속에서 형성된 여론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단순히 찬반 비율로 해석하기보다 국민의 인식 수준과 개념 이해도를 함께 고려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표현을 보다 직설적으로 ‘국가관계 인정’으로 하면 해결될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남북을 국가관계로 명시하는 것 자체가 헌법 3·4조 해석 논쟁을 부른다. 최근 통일부가 북한을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호명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반발에 부딪힌 것이나 기본계획에 ‘평화적 두 국가로의 전환’이란 표현을 담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헌법 해석과 국민 인식 혼재 속 대북정책은 용어 하나조차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