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금융지주사들이 현 정부의 생산적·포용금융 확대 기조를 경영 위험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KB·신한·우리금융지주는 지난달 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한 사업보고서에서 새도약기금 등 정책금융프로그램 탓에 대출이익이 줄고 연체율 및 자산건전성도 나빠질 수 있다고 했다. 정부의 과도한 관치금융이 부실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걱정이 담겨있다. 국내에서 대놓고 꺼내기 힘든 ‘불편한 진실’을 해외공시에서 드러낸 것인데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당장 금융권의 연체율과 부실채권에는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5대 시중은행의 연체율은 1분기 말 0.4%로 1년 전보다 0.1%포인트 상승했다. 부실채권(3개월 이상 연체 여신)도 5조원을 웃돈다. 문제는 부실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5대 금융 지주는 올해부터 5년간 서민·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을 위해 70조원을 쏟아붓고 미래전략산업과 혁신기업 지원에도 438조원을 배정했다. 이 돈이 회생불능의 좀비기업 등으로 흘러가면 금융부실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날 수 있다.
시장금리의 상승에도 저신용자의 대출금리는 떨어지는 기현상도 벌어진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1분위(하위 20%)의 평균 실효금리(금융부채 대비 연간 이자 지급액 비율)가 연 3.8%로 5분위(상위 20%, 3.95%)를 밑돌았다. 마이너스 통장조차 최고·최저 신용자 간 대출금리가 역전되는 사례까지 나온다. 정부와 은행이 정책금융과 전세대출 등을 통해 취약계층에 저금리 혜택을 준 결과다. 이런데도 이재명 대통령은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이 낮은 금리를 누리고 가장 절박한 사람이 가장 비싼 이자를 내야 하느냐”며 ‘잔인한 금융’을 다그친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도 신용등급을 ‘보이지 않는 계급장’에 빗대며 신용평가 틀을 확 바꾸라고 압박한다. 금리 왜곡이 더 심화하고 ‘버티면 빚을 없애준다’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까 우려스럽다.
빚의 덫에 걸린 취약계층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건 필요하다. 그렇다고 저신용자는 대우받고 고신용자가 불이익을 당하는 역차별이 돼서는 곤란하다. 성실히 상환하는 차주가 존중받지 못한다면 금융시스템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포용·생산적 금융이 신용제도의 근간을 훼손하고 금융기관까지 망가트려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