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를 연일 비판하자, 유럽 내에서도 안보 자강론이 일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유럽 방위산업체들에 무기 생산량을 늘릴 것을 압박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 주요 방산기업의 경영진을 만나 무기 분야 투자와 생산량 증대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특히 나토는 기업들에 미국산 의존도가 높은 핵심 분야인 방공 무기, 장거리 미사일, 군사위성 등 정보·감시 능력 분야의 역량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뤼터 사무총장은 유럽의 방산업체에 정부의 신규 발주가 없더라도 신속히 투자를 늘릴 것을 요구하면서, 만남에 앞서 기업들에 주요 무기에 대한 투자 계획과 생산량 증대 능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 성과를 7월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리는 연례 정상회의의 핵심 발표로 삼는다는 구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FT에 “뤼터 사무총장이 방산업계 경영진을 정기적으로 만나지만, 이렇게 기업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일부 기업은 다음 주에 인프라 확충, 원자재 확보 및 공급망 강화 등의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나토가 유럽의 방산기업을 압박하는 데에는 유럽 동맹국이 국방을 등한시한 채 미국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속적인 비판에 따른 것이라는 시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지난해 나토 회원국은 2035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를 달성하면 2035년 연간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 지출은 2024년 대비 1조달러(약 1500조원) 늘어나게 된다. 유럽 방산업체의 증산도 ‘유럽의 국방비 증액’을 현실적으로 가시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게 관계자 설명이다.
FT는 “이란 전쟁에서 미국을 제대로 지지하지 않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을 달래려는 시도로 보인다”며 “앙카라 정상회의에서 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공로라고 주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라고 짚었다.
유럽 안보에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근본 목적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내에서는 장거리 미사일 확보가 과제가 됐는데, 미국은 당초 올해부터 독일에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배치하기로 한 계획을 철회하면서 유럽 내 안보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주독미군 5000명을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으며, 지난 15일에는 미 육군 제1 기병사단 산하 제2 기갑여단전투단 병력 4000명의 폴란드 배치를 취소하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FT에 “두 가지 사건 모두 유럽인에게 무기 생산 능력과 역량을 신속히 강화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새로운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유럽 민주주의·인권 기구인 유럽평의회는 유럽 국가와 호주 등 36개국 및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단죄하기 위한 ‘우크라이나 특별재판소’ 설립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특별재판소는 유럽평의회 주도로 네덜란드 헤이그에 들어설 예정으로, 침략 전쟁을 결정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러시아 최고위 지도부의 책임을 묻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기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침략 범죄’ 자체에 대해서는 관할권이 제한되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설립이 추진됐다. EU 대부분 국가가 참여를 약속한 가운데 유럽 밖에서는 호주, 코스타리카가 함께 한다. 유럽평의회 회원국 중 튀르키예, 헝가리,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등 12개국은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알랭 베르세 유럽평의회 사무총장은 “정의와 희망을 상징하는 특별재판소의 설립과 우크라이나 침략 책임을 묻는 데 있어 이들 국가가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디뎠다”면서 “러시아가 침략 책임을 질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