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이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하고, 평균 수익률이 6%대를 기록하며 역대 가장 높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호황을 나타낸 국내 증권 시장에 비하면 여전히 실적이 저조할 뿐 아니라 자산 운용 방식에 따른 양극화도 컸다. 전체 적립금 상당수가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어 다수 가입자가 증시 호조에 따른 자산 증식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20일 고용노동부와 함께 발간한 ‘퇴직연금 투자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전년 대비 16.1% 증가한 501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적립금 400조원을 넘어선 지 불과 1년 만에 약 70조원 가까이 불어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제도 유형별로는 가입자가 직접 굴리는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 비중이 54.3%를 기록하며 전체 시장의 절반을 넘어섰다. 권역별로는 은행이 260조5000억원으로 전체의 52.3%를 차지했고 증권(131조5000억원)과 생명보험(87조8000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양적 성장 이면엔 수익률 양극화
적립금 운용 수익률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지표가 확인됐다. 지난해 퇴직연금의 연간 평균 수익률은 6.47%를 기록하며 2005년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달성했다. 다만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이 연간 75.63% 성장하고 국민연금(19.9%) 같은 연기금이 높은 수익을 달성한 것에 비하면 저조한 수치라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가입자 간 수익률 격차가 두드러졌다.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등 실적배당형 상품에 자산을 적극적으로 배분한 수익률 상위 10% 가입자의 평균 수익률은 19.5%로 집계됐다. 이들은 전체 적립금의 84%를 실적배당형에 집중했는데, 그 결과 전체 적립금 증가액의 67%를 투자 운용 수익으로 채웠다. 반면 자금의 74%를 원리금보장형에 둔 하위 10% 가입자의 수익률은 0.5%에 머물렀다. 사실상 납입 원금에만 의존한 셈으로, 두 그룹 간 수익률 격차는 19.0%포인트에 달했다.
당국은 이런 차이를 두고 “자산 운용에 실패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시도하지 않은 결과”라며 가입자의 ‘무관심’이 저조한 수익률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적립금 75%는 원리금보장에 묶여
전반적인 평균 수익률이 크게 오르지 못하고 양극화가 심화된 주된 원인으로는 적립금의 쏠림 현상이 꼽힌다. 지난해 실적배당형 상품의 평균 수익률은 16.80%에 달하며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운용 방법별로도 실적배당형 비중(24.6%)이 최근 3년간 2배 가까이 성장했다. 하지만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75.4%에 해당하는 378조1000억원은 여전히 평균 3.09% 수익에 그치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쏠려 있었다.
연금 자산의 특성상 이러한 운용 성과 격차는 복리 효과가 누적되면서 장기적으로 기하급수적인 노후 자금 차이를 초래한다. 실제 특정 연기금과 퇴직연금 상품의 과거 수익률 추이를 적용해 산출한 결과, 매년 1000만원씩 20년간 총 2억원의 원금을 납입했을 때 적극적으로 자산을 배분한 가입자는 4억3000만원을, 원리금보장형 위주로 방치한 가입자는 2억7000만원을 수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은 퇴직연금이 실질적인 노후 대비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과 함께 가입자의 인식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직접 자산을 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가입자를 위해서는 맞춤형 전용 상품의 활용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장기간 연금 수령이 가능하도록 상품 구조를 정비하고, 가입자 노후 소득 전반을 고려한 사업자의 맞춤형 컨설팅 역할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