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 작품 2747편 가운데 단 19편만 본선에 오른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라 시네프’(학생영화) 부문. 그 치열한 경쟁에서 2등상을 거머쥔 진미송(미국명 나딘 미송 진) 감독은 담담한 모습이었다. 수상 다음 날인 22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팔레 데 페스티발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며 “영화를 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전날 큰 상을 받았지만 들뜬 기색은 없었다. 여느 때처럼 좋은 영화를 찾아다니는 학생 감독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는 전날 단편 ‘사일런트 보이시즈’로 칸영화제 라 시네프 2등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라 시네프는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이 만든 중·단편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경쟁 부문이다. 올해는 전 세계 662개 영화학교에서 출품작이 몰렸다.
17분 분량의 이 작품은 한국에서 뉴욕으로 이민한 4인 가족의 하루를 각자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병든 부모를 고국에 두고 온 아버지, 예술의 꿈을 접은 어머니, 서로 다른 불안과 고민 속에 사는 두 딸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가족들은 서로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각자의 고통을 침묵 속에 감춘다. 진 감독은 수상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한 그는 현재 컬럼비아대 영화과 MFA 과정에 재학 중이다. 미국 생활 경험 없이 대학 졸업 후 뉴욕으로 건너가 학업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는 연극 연출가를 꿈꿨다. 고3 때 영화로 방향을 틀었고, 대학 졸업 전후로 장편 독립영화 현장에서도 일했다. 그는 “위계질서가 강한 영화 현장에서 실전 경험은 쌓을 수 있었지만, 연출 면에서 깊이 있는 배움을 얻지는 못했다”고 했다. 같은 상황에 놓인 다양한 국적 동료들과 함께 배우고 작업할 환경이 절실했다. 유학길에 오른 이유다.
한국에서는 시나리오를 쓰는 일 자체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서양, 특히 유럽 중심 영화를 보며 자라 한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유학은 역설적으로 그를 더 한국으로 향하게 했다. 그는 “미국에서 생활하고 작업하다 보니까 오히려 한국에서 더 (영화를) 찍고 싶어졌다”고 했다. 이어 “주변의 인터내셔널 친구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며 “조국에서 영화를 찍기 어렵다고 느껴 미국에 왔지만, 그곳 역시 완전한 집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부모가 있는 집과 자신이 떠나온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미국에 와서 한국의 사회 현상을 더 고민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낯선 뉴욕 생활에서 느낀 이 같은 감각은 ‘사일런트 보이시즈’ 원료가 됐다. 그는 “한국에만 살다 뉴욕에 가니 일상에서 위축되는 경험을 하고, 매일 작은 패배감을 느켰다”며 “뉴욕의 수많은 이민자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함께한다는 생각에 영화를 출발했다”고 말했다.
컬럼비아대 생활에 대해서는 “너무 길고도 너무 짧았다”고 표현했다. 그는 “초기에는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극복했다”며 “연출과 시나리오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 정말 좋은 친구들을 얻게 된 게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동료들은 ‘사일런트 보이시즈’ 제작 스태프로 참여했다.
진 감독은 라 시네프 수상 전부터 이미 눈부신 커리어를 쌓아왔다. 단편 ‘Juk’으로 2024년 미국감독조합(DGA) 학생영화상 대상(Grand Prize)을 받은 바 있다. 미국 학생 영화 부문 최고 권위 중 하나로 꼽히는 상이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의 황동혁 감독과 영화 ‘벌새’의 김보라 감독도 이 상을 받았다. 한국어 ‘죽’을 제목으로 사용한 이 작품은 한국 이민자 가족의 모녀 3대를 그렸다.
올겨울에는 뉴욕에서 한인 네일 살롱을 배경으로 한 단편 영화를 촬영할 계획이다. 그는 “손님으로 오는 백인들과 일하는 사람들의 하루가 교차하는 이야기”라며 “큰 사건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영화에서 극적인 사건은 최대한 덜어내려 하는 편”이라며 “현실에서는 그렇게 드라마틱한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실에 충실하려면 일상 속에서 드라마틱한 것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10월 컬럼비아대 졸업을 앞둔 그는 장편 영화는 한국에서 찍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현재 구상 중인 작품은 유복한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성장한 한 30대 여성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질식감을 느끼며 일탈하는 이야기. 그는 “아직은 혼자 시나리오를 끄적이는 단계”라고 했다.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감독으로는 프랑스 감독 로베르 브레송(1901∼1999)과 이탈리아 감독 루크레치아 마르텔(1966∼)을 꼽았다. 그는 “‘사일런트 보이시즈’를 찍을 때 브레송의 ‘돈’과 ‘당나귀 발타자르’를 많이 참고했다”고 했다. 마르텔에 대해서는 “그의 이미지 하나하나에 전체적 시선이 담겨 있다”며 “그의 영화를 보며 ‘무슨 이야기를 할까’보다 ‘어떻게 찍을까’를 더 고민하게 한 감독”이라고 말했다.
칸 수상에 대해 그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친구들이 얼마나 열심히 작업했는지, 또 그 작품들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고 있다”며 “운이 많이 따라줬다는 걸 알기 때문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다가올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작업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라 시네프 상금 1만1000유로(약 1900만원)는 “배급사와 잘 나눠 갖고 다음 작품을 만드는 데 보태겠다”며 웃었다.
인터뷰 말미 그는 “한국인과 코리안 아메리칸은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그럼에도 한국에서 ‘사일런트 보이시즈’를 한국 영화로 받아들여 준 데 감사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