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그는 풀만 앰배서더 서울 이스트폴의 F&B 총괄 셰프로 호텔의 다양한 식음 공간을 이끌고 있다. 특히 오픈 파이어 그릴 스테이크하우스인 엠버스는 지금 서울 미식 신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간 중 하나다. 참나무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공간, 강렬한 화력을 품은 오븐, 그리고 스테이크를 중심으로 설계된 입체적인 다이닝 경험은 이곳을 단순한 호텔 레스토랑 이상의 공간으로 만든다.
흥미로운 건, 이 셰프가 처음부터 셰프를 꿈꿨던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 가족의 권유로 요리를 시작했고, 고모부의 지원으로 요리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들어오게 됐다. 처음에는 동네 호프집과 치킨집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을 배웠고, 이후 대학 실습 과정에서 그랜드 하얏트 서울 주방에 들어가며 비로소 ‘진짜 셰프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됐다.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설명할 때 늘 “운이 좋게도 좋은 브랜드와 좋은 셰프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것이 단순히 운만으로 만들어진 길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실무를 시작한 뒤, 파크 하얏트 서울 오픈 멤버로 참여했고, 콘래드 서울, JW 메리어트 동대문, 포시즌스 호텔 서울, 소피텔,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까지 한국 호텔 F&B의 굵직한 현장을 차근차근 경험하며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왔다. 그 과정 속에는 지금의 그를 만든 중요한 멘토들도 있었다. 보르고 한남 스테파노 디 살보 오너 셰프에게서는 기본기와 태도를 배웠고, 아키라 백 셰프에게서는 음식의 밸런스와 브랜드 감각을 익혔다. 단순히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을 넘어, 공간과 경험 전체를 설계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요리’와 ‘브랜딩’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실제로 엠버스는 그런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조지 풀만의 럭셔리 기차 다이닝칸에서 영감을 받은 레스토랑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묘한 여행의 감각을 만든다. 손님은 단순히 메뉴를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스테이크 나이프를 직접 고르고 티를 선택하며 식사의 흐름 자체를 경험하게 된다. 이 셰프는 “먹는 행위만으로는 이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손님은 분위기를 기억하고, 불향을 기억하고, 소리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음식뿐 아니라 공간의 온도와 흐름까지 세심하게 설계한다. 실제로 엠버스의 스테이크는 미국식 불칸 브로일러와 조스퍼 차콜 오븐을 병행 사용하며 서로 다른 불맛을 만들어낸다. 미국산 USDA 프라임 비프는 35일 이상 드라이에이징해 깊은 풍미를 끌어내고, 한우 암소 No.9는 웻에이징으로 부드럽고 깨끗한 맛을 살린다. 같은 스테이크라도 불과 숙성에 따라 얼마나 다른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의 시그니처는 단지 스테이크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신 있게 얘기하는 첫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소고기 플랫 피자’다. 얇고 바삭한 도우 위에 올려진 소고기와 감칠맛 가득한 소스는 첫 입부터 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메뉴는 아키라 백 셰프의 튜나 피자와 스테파노 디 살보 셰프의 비텔로 토나토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이탈리안 스타일의 튜나 소스에 일본식 우마미를 더해 엠버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메뉴인데, 와인과 함께 곁들이면 그 진가가 훨씬 선명해진다. 단순히 피자라고 부르기에는 꽤 섬세하고 입체적인 맛의 구조를 갖고 있다.
두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랍스터 칼다로’다. 시칠리아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이 요리는 뷔야베스 베이스에 토마토의 산미를 더해 깊고 풍부한 해산물 풍미를 완성한다. 랍스터의 진한 감칠맛과 소스의 밸런스가 굉장히 인상적인데, 프렌치와 이탈리안 조리 기법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화려하게 튀기보다 차분하게 깊이를 쌓아가는 스타일의 요리다. 셰프 본인도 가장 애정하는 메뉴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밸런스’다. 예전에 아키라백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는 오이 샐러드라는 단순한 메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코스 안에서 그 메뉴를 먹어보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강한 맛의 요리 사이에서 입안을 정리해주고, 다음 요리를 더 맛있게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 경험 이후 그는 ‘혼자 튀는 음식’보다 전체 식사의 흐름을 살리는 요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일까. 그의 음식은 과시적이지 않다. 대신 안정감이 있다. 먹는 사람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계산되어 있고, 과하지 않게 만족스럽다. 그리고 그 균형감은 그의 주방 운영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일은 재미있게, 몸은 힘들게”라고 표현한다. 주방은 본래 육체적으로 힘든 공간이지만, 분위기만큼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웃으며 일할 수 있는 팀이 결국 좋은 음식을 만든다고 믿는다. 어쩌면 그래서 엠버스의 음식에는 묘한 따뜻함이 있다. 기술과 경험은 분명 최고 수준인데, 그 끝에는 결국 ‘사람’이 남는다. 인터뷰 말미, 앞으로의 꿈을 묻자 그는 언젠가 자신의 이름이 담긴 호텔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누군가 호텔 로비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설렘과 기대감, 그 감정을 직접 설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셰프는 단순히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경험’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