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업계의 미세플라스틱 검증 경쟁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필터가 얼마나 잘 걸러내는지가 핵심이었다. 이제는 정수기를 통과한 물에서 실제로 검출되는지까지 따지는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
소비자가 마시는 것은 필터가 아니라 컵에 담긴 물이다. 정수기 내부 유로와 소재, 사용 환경까지 고려한 검증이 중요해진 이유다.
14일 가전업계에 따르면 코웨이 대표 정수기 2종의 정수수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지 않았다.
시험 대상은 직수형 ‘아이콘 정수기3(CHP-7220N)’와 탱크형 ‘얼음정수기 RO(CHPI-7521L)’다. 공인시험기관인 KOTITI시험연구원이 국제 표준 분석방법인 ‘ISO 16094-2’에 따라 1㎛ 이상 미세플라스틱 검출 여부를 확인했다. 1㎛는 머리카락 굵기의 약 100분의 1 수준이다.
시험 결과 두 제품 모두 1㎛ 이상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지 않았다.
코웨이가 강조한 대목은 검증 범위다. 기존 정수기 업계의 미세플라스틱 검증은 주로 필터 제거 성능에 맞춰져 있었다. 이번 시험은 실제 정수기를 거친 물을 대상으로 했다. 필터 성능뿐 아니라 정수기 내부에서 생길 수 있는 2차 오염 가능성까지 함께 본 셈이다.
정수기 업계의 미세플라스틱 대응은 2018년부터 본격화됐다.
SK매직은 2018년 4월 직수정수기를 대상으로 미세플라스틱 제거능력 평가 실험을 진행했다. 당시 환경부의 수돗물·생수 미세플라스틱 실태조사에서 쓰인 입자 크기와 해양 연구 기준을 참고해 규격화된 입자 물질을 조제했다.
SK매직은 조제 시료 10ℓ를 정수기 필터시스템에 통과시킨 뒤 50㎖를 샘플링해 레이저 회절법으로 분석했다. 회사는 이 실험에서 미세플라스틱이 100% 제거됐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정수 후 플라스틱관에서 생길 수 있는 2차 오염을 줄이기 위해 스테인리스 직수관을 적용했다는 점도 함께 내세웠다.
이후 경쟁은 더 촘촘해졌다. 코웨이는 2022년 나노트랩 필터 3종과 직수형 정수기 26개 제품에 대해 미국수질협회(WQA) 미세플라스틱 제거 성능 인증을 받았다. 인증 시험에서는 0.5~1㎛ 크기의 미세입자 제거율 99% 이상이 확인됐다는 설명이다.
이번 시험은 그 연장선에 있다. ‘필터가 얼마나 걸러내는가’에서 ‘정수기를 거친 물에 남아 있는가’로 질문이 바뀐 것이다.
미세플라스틱은 아직 국내 먹는물 기준에서 별도 관리 항목으로 자리 잡은 단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검증을 강화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세플라스틱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물맛이 좋다고 안심하기도 어렵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품 설명보다 공인기관 시험과 분석 방법을 더 따질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는 규제 논의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2026년 4월 제6차 규제 후보물질 목록(CCL6) 초안에 미세플라스틱을 포함했다. 후보 목록에 올랐다고 곧바로 법적 기준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향후 조사와 규제 검토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제표준화기구(ISO)도 물속 미세플라스틱 분석 방법 표준화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는 ‘미세플라스틱을 걸러낸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입자 크기를, 어떤 조건에서, 어떤 분석법으로 시험했는지가 함께 제시돼야 한다.
정수기 시장은 한동안 직수형, 얼음정수기, 온수 기능, 디자인을 중심으로 경쟁해 왔다. 최근에는 안전성 검증이 다시 전면에 나오고 있다.
특히 미세플라스틱 검증은 소비자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영역이다. 브랜드 신뢰가 시험기관, 인증, 분석법, 실제 정수수 검증으로 이동하는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수기 성능 경쟁은 이제 필터 스펙을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사용 환경에서 나온 물까지 검증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거율 숫자뿐 아니라 시험 대상, 입자 크기, 분석 방법을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