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의 막이 오른 가운데, 태극전사들은 조별리그 첫 경기인 체코전에서 짜릿한 2대1 승리를 거둬 기분 좋은 첫발을 내디뎠다. 축구 팬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이 거대한 축제의 정점에는 ‘월드컵 트로피’가 있다.
◆ 트로피의 어원과 유래
트로피(trophy)의 어원은 승리를 기념해 세운 조형물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tropaion’에서 유래했다. 트로피의 시초는 고대 그리스 시대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물이다. 당시 승전국은 패배한 적군에게서 노획한 신체 일부와 무기, 깃발 등을 나무나 말뚝에 사람 형상으로 걸어 기념물을 세웠다. 여기에는 전투 기록과 신에게 바치는 헌사를 새겨 넣었다. 기념품은 신성시되어 자연적으로 부패하게 놔뒀으며 이를 파괴하는 행위는 신성모독으로 여겼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이 관습을 이어가되, 말뚝 대신 기둥이나 개선문에 전리품을 세우는 방식으로 변했다. 트로피가 오늘날 ‘우승컵’ 형태를 보인 시기는 18세기 초 영국 앤 여왕 시절 승마대회 우승자가 술을 따라 마실 수 있는 형태로 만들면서다. 이때부터 트로피는 곧 스포츠 경기 승자를 위한 ‘축배’를 상징하게 됐다.
우승컵의 외형은 이름에도 대회 명칭에도 영향을 미쳤다. 축구의 월드컵, 테니스의 데이비스컵, 골프의 라이더컵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흔히 쓰이는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등의 명칭에 포함된 ‘배(杯, 盃)’도 한자로는 ‘잔’을 의미해 같은 맥락이다.
◆ 첫 번째 월드컵 트로피, ‘줄리메컵’
하지만 현재 전 세계 이목을 끌고 있는 FIFA 월드컵의 트로피는 우리가 아는 ‘우승컵’ 형태와 거리가 있다. 지금의 트로피는 역대 두 번째 모델이며, 첫 번째 트로피의 역사는 19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FIFA 월드컵 공식 후원사 코카콜라가 홈페이지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최초의 월드컵 트로피는 월드컵 창시자의 이름을 딴 ‘줄리메컵(Jules Rimet Trophy)’이다. 프랑스 조각가 ‘아벨 라플뢰르’가 디자인한 이 트로피는 청금석 받침대 위에 승리의 여신 ‘니케’가 순금으로 된 8각의 성찬배를 받들고 있는 형상이다. 전반적인 재질은 순은에 금을 입혔으며 높이 38㎝, 무게 3.8㎏이다. 받침대에 부착된 황금판에는 트로피의 이름과 역대 우승 연도, 우승국의 이름이 차례로 새겨졌다.
줄리메컵은 우여곡절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1942년 대회가 취소되자, 나치의 약탈로부터 트로피를 지켜내야 했다. 당시 ‘오토리 바라시’ 이탈리아 축구협회 관계자는 줄리메컵을 침대 밑 구두 상자 속에 넣어 숨겼다.
도난 사건도 잇따랐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을 앞두고 런던 웨스트민스터 센트럴 홀에 전시 중이던 트로피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다행히 도난 7일째, 런던 교외의 한 정원 울타리 밑에서 신문지에 싸인 채 발견됐다. 이는 놀랍게도 주인과 산책하러 나간 ‘피클스’라는 강아지가 찾아냈다.
당초 월드컵은 ‘통산 3회 우승국이 트로피를 영구 소유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이에 따라 1970년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이 줄리메컵의 주인이 됐다. 그러나 비극은 반복됐다. 1983년 12월 19일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축구협회 본부에서 보관하던 중 줄리메컵은 다시 도난당했다. 브라질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트로피의 행방은 현재까지도 묘연하다. 현지 언론과 수사 당국은 절도범들이 컵을 녹여 밀매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국 브라질 축구협회는 도난 이듬해인 1984년 자체 제작한 복제품을 보유하게 됐다.
◆ 두 번째 월드컵 트로피, ‘FIFA 월드컵’
1970년 브라질이 줄리메컵을 영구 소유하면서 FIFA는 새 트로피를 제작했다. 공식 명칭이 ‘FIFA 월드컵(The FIFA World Cup)’인 이 우승컵은 피파컵(FIFA Cup)으로도 부르며 서독 월드컵 때부터 도입했다.
디자인 공모를 진행해 전 세계 53개 공모작 중 이탈리아 조각가 ‘실비오 가자니가’의 디자인을 최종 선정했다. FIFA에 따르면 피파컵은 높이 36.6㎝, 무게 6.175㎏으로 18K 금으로 제작했다. 지름 15㎝ 받침대에는 초록색 공작석 띠가 두 줄 둘리어 있으며 바닥면에는 역대 우승국 이름과 연도가 원형으로 새겨진다. 두 사람이 승리의 순간을 만끽하며 지구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트로피는 오늘날 월드컵이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임을 상징한다. 조각가 가자니가는 “세계를 구 모양으로 디자인해서 축구공과 유사하게 표현했다”고 FIFA 홈페이지에서 설명했다.
줄리메컵 도난 사건을 계기로 FIFA는 피파컵의 관리·취급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우선 줄리메컵의 비운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25만 스위스 프랑의 보험에 가입했다. FIFA에 따르면 현재 피파컵은 월드컵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와 국가 원수 등 극히 일부 사람만이 직접 만질 수 있다. 원래 다음 월드컵 대회까지 우승한 국가의 축구연맹 트로피 전시 캐비닛에 보관하다가 FIFA에 반납했지만, 2006년부터 우승국이라 하더라도 우승컵을 4년 간 소유할 수 없다. 시상식 때만 우승국에 잠시 수여하고 행사 직후에는 FIFA가 회수해 스위스 취리히 본부 금고에 보관한다. 대신 우승국에는 진품을 본딴 복제품이 주어진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의 화려한 막이 오른 지금, 황금빛 트로피를 향한 48개국의 치열한 레이스는 이미 시작됐다. 19일 멕시코전을 앞둔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어떤 드라마를 써 내려가며 주인공으로 거듭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