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달라하라=남정훈 기자] 지난 12일(이하 한국시간) 체코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첫 경기를 2-1 역전승으로 마무리한 한국 축구 대표팀은 14일 휴식일을 받았습니다. ‘캡틴’ 손흥민은 이재성, 김승규 등 동료들과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한 타코 식당을 찾아 식사를 즐겼습니다. 멕시코 내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손흥민의 타코 가게 방문은 현지 언론 매체 및 SNS 상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손흥민이 시킨 메뉴부터 고수를 빼고 먹는 식습관 등 일거수일투족이 집중 조명됐습니다. 멕시코 팬들은 SNS 댓글을 통해 ‘진정한 멕시코 타코를 즐기기 위해선 길거리 가게를 갔어야 했다’, ‘그 타코 가게의 소스는 별로다’ 등의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죠.
슈퍼스타 손흥민이 귀한 휴식일 일정을 쪼개 방문한 타코 가게의 맛과 분위기, 손흥민의 방문 이후 달라진 풍경 등이 궁금해 16일에 본 기자도 직접 방문해봤습니다. 오픈 시간(오후 1시30분)을 약 30분 남겨놓고 방문했지만, 점원들은 기꺼이 저희를 위해 가게를 열어줬습니다. 첫 손님이었기에 테이블을 고를 수 있었고, 저희는 손흥민과 동료들이 앉았던 자리를 요청했습니다. 점원들 모두 손흥민이 앉았던 자리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더군요.
손흥민이 주문했다는 양념 돼지고기의 파스토르(Pastor)와 쇠고기 안창살의 아라체라(Arrachera), 과카몰리에 훈연 쇠고기(Asada), 초리소(Chorizo) 타코도 하나씩 주문했습니다. 멕시코 팬들의 혹평과는 달리 타코 맛은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양파와 라임즙, 각종 소스, 과카몰리를 고기에 얹어 또띠아에 싸 먹으니 ‘멕시코 정통 타코란 이런 맛이구나’ 싶더군요.
식사를 다 마치고, 손흥민에게 직접 서빙한 직원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요청하니 마침 비번이라 없다더군요. 그래서 저희에게 서빙을 해준 미네르바(20) 양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미네르바는 “손흥민의 방문 이후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국 관광객뿐만 아니라 멕시코 현지인들도 와서 손흥민이 앉은 자리가 어딘지, 무엇을 시켜먹었는지 물으며 똑같은 메뉴를 주문하곤 한다”면서 “저녁 시간엔 줄을 서서 기다리는 행렬도 생길 정도”라고 설명했습니다. 손흥민의 인기를 새삼 한 번 더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영어를 아예 못하는 미네르바와 스페인어를 못하는 본 기자는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으며 대화를 나누며 금세 친해졌고, 손흥민 이외의 얘기도 이것저것 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에서 과달라하라 청년들의 서글픈 현실도 알게 됐습니다.
미네르바의 시급은 손님들의 팁 포함 50페소(약 4400원)랍니다. 5~6시간을 일하니 일당은 250~300페소(약 2만2000~2만6000원)쯤 되는 거죠. 근데 여기 과달라하라의 물가는 서울보다 결코 낮지 않습니다. 아니 더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맥도날드 빅맥 세트로 비교해봐도 한국은 7600원인 반면 과달라하라에선 130페소(약 1만1420원)나 합니다. 미네르바가 빅맥 세트를 먹으면 일당의 절반이 날아가는 셈입니다. 그에 비해 한국의 최저시급은 1만320원이니 한 시간 일한 돈으로 빅맥 세트를 사먹어도 돈이 남습니다. 한국 청년들에 비해 멕시코 청년들의 주머니 사정이 훨씬 팍팍하다는 얘깁니다.
미네르바 같은 평범한 멕시코 청년들에겐 19일 열리는 한국-멕시코전 직접 관람은 ‘그림의 떡’입니다. 한국-멕시코전의 티켓값은 5만 페소(약 440만원)까지 치솟았다고 합니다. 미네르바가 1000시간을 일하고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해야만 살 수 있는 가격입니다. 과달라하라의 대다수는 직관을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과달라하라 대성당 앞 해방광장에서 설치된 FIFA 팬 페스티벌 행사장에 왜 그리 많은 멕시코인들이 축구를 관람하러 모여드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되니 왜 한국-체코전 때 가격이 비싼 1층 중앙 좌석이나 VIP석에 빈 자리가 눈에 띄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에스타디오 아크론에서 파는 코로나 생맥주 한 잔 가격은 330페소(약 2만9000원)이나 하고, 변변찮은 샌드위치도 290페소(약 2만5400원)입니다. 이런 살인적인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축구를 보라는 게 FIFA의 방침인걸까요.
멕시코 과달라하라는 이번 월드컵 16개 개최 도시 가운데 1인당 평균 소득이 가장 낮은 지역입니다. 1인당 한해 평균 세후 소득은 686만원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월드컵 티켓 리셀 가격은 멕시코의 못 말리는 ‘축구 사랑’ 때문에 최고 수준이라네요. 과달라하라 시민 대다수에겐 월드컵은 그저 ‘남의 잔치’인거죠. FIFA가 누구나 월드컵을 즐길 수 있도록 티켓값을 도시마다 경제력을 감안해 현실화하길 기대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