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 일본과 네덜란드의 경기 당일 일본 도심 거리 응원 현장에 욱일기가 등장하며 한일 양국 누리꾼 사이의 역사 인식 충돌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이 경기장 내부의 욱일기 반입을 엄격히 통제하자 장외 거리 응원으로 장소를 옮겨 욱일기를 꺼내든 것이다.
◆ 매번 반복되는 욱일기 논란과 파장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1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경기장 안에서는 국제축구연맹이 욱일기 응원을 금지하다 보니 거리에서 욱일기 응원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욱일기를 응원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상처를 무시하는 잘못된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서 교수의 발언은 야후재팬 등 일본 주요 포털 사이트를 통해 현지에 집중 보도되었다. 기사를 접한 일본 현지 누리꾼들은 ‘한국만 유독 욱일기를 문제 삼는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반면 국내 누리꾼들은 ‘과거 침략 전쟁의 상징을 국제 스포츠 행사에 끌어들이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욱일기를 바라보는 극명한 관점 차이, 역사적 기원은?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에게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군국주의와 침략 전쟁을 상징하는 전범기다. 반면 일본 사회에서 일부는 이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며 국제 스포츠 행사나 외교 무대 등에서 욱일기를 노출하고 있다.
NHK 등 일본 매체들에 따르면 중앙의 태양에서 햇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방사형 문양 자체는 1603년부터 1867년까지 이어진 에도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다.
어부들이 물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 내거는 풍어기나 출산, 명절 등 경사스러운 날을 축하하는 민간의 길상 문양으로 널리 쓰였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 내 여러 박물관에는 풍어기가 걸린 어선을 묘사한 전통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전통 문양이 군국주의의 색채를 띠게 된 기점은 메이지 유신 이후다. 일본 제국 정부는 1870년 태양 주위로 16개의 햇살이 뻗어나가는 16조 욱일기를 일본 육군의 공식 군기로 채택했다.
이어 1889년에는 일본 해군이 햇살은 16개로 동일하지만 태양의 위치가 깃대 쪽으로 약간 치우친 형태를 해군 군함기로 공식 지정했다. 이후 각 군의 공식기로 지정된 욱일기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선봉에 섰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욱일기를 단순한 문양이 아닌 피와 탄압의 상징으로 기억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 패전 후 금지됐지만 냉전 속 부활까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일본군 해체와 동시에 욱일기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냉전 체제가 격화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이 일본의 방위력 증강을 위해 재무장을 허용하면서 1954년 일본 자위대가 창설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 해상자위대는 과거 제국 해군이 사용하던 16조 욱일기를 자위함기로 다시 채택했다. 육상자위대 역시 햇살의 수를 8개로 줄인 8조 욱일기를 자위대기로 공식 채택하며 제국주의의 상징이 합법적인 국가 기관의 깃발로 부활하게 되었다.
욱일기의 부활은 단순한 깃발의 재도입을 넘어 전후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 불완전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 일본 사회의 5가지 방어 논리와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오늘날 일본 사회가 욱일기를 옹호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배경에는 크게 다섯 가지의 논리가 존재한다.
첫째는 욱일기가 군국주의의 전유물이 아닌 예로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축하 문양이라는 인식이다. 둘째는 현재 자위대가 사용하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공식 깃발이라는 주장이다. 셋째는 전범기라는 비판에 맞서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동일선상에 놓이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는 태도다.
넷째는 일본 내 극우 세력과 혐한 단체가 반한 시위 등에서 국수주의를 과시하는 배타적 도구로 욱일기를 악용하는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일본 젊은 세대의 역사 인식 부재와 무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
서경덕 교수는 “이러한 일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욱일기에 얽힌 침략의 역사를 올바르게 배우지 못했다는 증거”라며 “어떠한 이유로도 욱일기 사용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욱일기의 전통적 뿌리와 현재의 법적 정당성만을 내세우며 과거 제국주의가 남긴 폭력성에는 눈을 감고 있다.
피해국들이 욱일기 아래서 자행된 역사적 상처를 생생히 기억하는 한, 역사를 방어하려는 일본과 이를 규탄하는 한국 간의 인식 격차는 앞으로도 쉽게 좁혀지지 않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