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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의 제5영역] 믿든 안 믿든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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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다룬 영화 ‘디스클로저…’ 감춰진 진실 폭로
현실도 비슷… 다른 편 얘기 들어주는 ‘소통력’ 중요

내가 하는 일을 쉽게 말하면, 언론에 안 좋은 기사가 나와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사례를 드는 편이 낫겠다. 대개 이런 사람들이다. 만나던 여자친구를 때린 남자, 회사 기술을 빼돌려 창업한 기업가, 돈으로 여론조사를 조작한 정치인 등등.

하나같이 비난받아 마땅할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남자는 이별을 통보했더니 물리적으로 구타를 시작한 여자친구의 팔을 붙잡았을 뿐이고, 기업가는 독립해 차린 회사가 잘되자 전 직장에서 그의 개인 클라우드에 남아 있던 회사 파일을 빌미로 고발한 경우였다. 정치인은 오히려 너무 뻔했다. 지지율이 뒤진 상대 후보가 일단 조작이라며 몰아붙였다. 모두 법적 절차를 밟았고, 승리했다. 하지만 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여론은 순식간에 이들을 교제 폭력, 기술 탈취, 사기꾼 정치인으로 낙인찍는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최근 ‘디스클로저 데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어릴 적 좋아했던 영화 ‘E.T.’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촬영한 또 다른 외계인 영화다. 이번엔 지구인들이 불시착한 외계인을 가둬놓고 실험했다는 내용인데, 이 지구인들은 외계인 기술을 독점하고자 79년간 비밀조직을 만들어 전 지구를 속여가며 외계인을 독점 관리한다. 주인공은 세계인에게 이 비밀을 폭로하는데, 그래서 영화 제목이 ‘폭로의 날’(Disclosure Day)이다.

나는 흥미로웠지만, 함께 영화를 본 아내는 정작 마지막에 비밀이 폭로되는 장면에서 몰입이 깨졌다고 했다. 어느 날 뉴스에서 갑자기 지난 79년간 외계인이 우리 옆에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온 세상이 순식간에 외계인의 존재를 믿게 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얘기였다. 내 생각은 좀 달랐다. 그 비현실성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외계인의 존재를 믿고 싶어 한다. 실제로 UFO를 봤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그러던 와중에 언론이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뉴스로 보도한다. 이야기에 권위가 실린다. 곧이어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로 이 뉴스를 전파한다. 영화를 보면 세계인이 거리에서, 버스 안에서, 심지어 전쟁의 기운이 가득한 참호 속에서 동시에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옆 사람과 같은 내용을 같은 시간에 경험하면 믿음은 더 커진다.

이렇게 거짓말 같은 소식을 순식간에 믿게 되는 일은 사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1년 반 전의 12월3일 밤을 떠올려 보자. 카카오톡이 쉼 없이 울리면서 모두가 동시에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계엄 선포 7분 만에 네이버 뉴스 트래픽이 평소 최고치의 13배로 높아졌다. 뉴스의 권위를 소셜미디어에 힘입어 모두가 동시에 경험한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비현실적인 뉴스가 등장해도 순식간에 믿게 된다. 2024년 12월 이전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군사계엄을 떠올린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미디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메커니즘을 잘 이용한다. 스마트폰을 통한 동시 확산의 프레임이 너무나 강력한 걸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별 통보에 앙심을 품고 SNS에 ‘폭로글’을 올리는 전 여친, 회사를 떠나는 임원의 새 사업을 주저앉히려 ‘기술 유출’ 프레임을 씌우는 전 직장의 사례 등은 생각보다 흔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또 다른 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지 않는다. 바빠서, 귀찮아서, 내 일이 아니라서. 오히려 외계인 이야기를 쉽게 믿는 것처럼 ‘깔끔한 악당’의 이야기를 쉽게 믿는다.

나는 내 고객이 이런 비극 속에서 허우적대지 않도록 노력한다. 사람들에게 한번 더 들어달라고 부탁하는 일, 다른 시각도 필요하다고 설득하는 일이 내 업무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너무 좋았다. 40년 전 좋아했던 E.T.만큼이나 내게 오래 기억될 디스클로저 데이의 마지막 대사는 이 한마디였다.

“들어보세요.”(Listen.)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