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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억의 ‘무게’, 그리고 천안독립기념관의 ‘그림자’ [오상도의 경기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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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재정 장벽에 부딪힌 ‘경기도 독립기념관’…민선 9기 인수위 시험대 올라
김동연 지사 역점 사업, 건립 예산 872억·매년 운영비 50억 추산에 행정절차 주춤
천안 독립기념관과 ‘역할 중복’ 논란 여전…세수 감소 속 예산 우선순위 밀릴 수도

길을 걷다 보면 이따금 역사라는 거대한 벽과 마주하게 된다. 그 벽 앞에서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다짐하곤 한다. 경기도가 품으려 했던 ‘자체 독립기념관’ 역시 1400만 도민의 가슴에 세우려던 기억의 벽이었을 터다.

 

경기도가 건립을 추진 중인 경기도 독립기념관 투시도. 경기도 제공
경기도가 건립을 추진 중인 경기도 독립기념관 투시도. 경기도 제공

2024년 어느 가을날의 초입, 경술국치일의 아픔을 되새기며 광복회 문을 두드렸던 김동연 경기지사의 다짐은 자못 비장했다. “경기도가 제대로 된 역사를 만들고, 독립운동을 선양하는 데 앞장서겠다”던 약속이다. 그 뜨거웠던 선언이 2년이 지난 지금, 차가운 숫자의 현실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민선 9기 도지사직 인수위원회의 책상 위에 올라갈 마스터플랜 용역 보고서는, 역사의 숭고함 대신 재정난을 겪는 지자체의 묵직한 청구서로 바뀌었다.

 

◆민선 9기 도지사직 인수위에서 업무보고 예정

 

민선 8기 경기도가 추진해 온 ‘경기도 독립기념관’ 건립 사업이 중대 갈림길에 섰다. 독립운동 정신을 선양하고 수도권의 역사 교육 거점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1000억원에 육박하는 막대한 사업비와 기존 국립 시설과의 기능 중복 논란을 넘지 못하면서 재검토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17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진행한 ‘독립기념관 마스터플랜 연구용역’ 결과를 조만간 민선 9기 도지사직 인수위원회(경기준비위원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당초 도는 올해 하반기 시·군 공모를 거쳐 부지를 무상으로 확보한 뒤, 행정안전부 타당성 조사와 지방재정투자심사 등 후속 절차에 돌입해 2031년 9월 완공을 목표로 삼았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지난 6일 오전 수원시 현충탑에서 진행된 제71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김동연 경기지사가 지난 6일 오전 수원시 현충탑에서 진행된 제71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하지만 올해 초 연구용역 결과가 나온 이후 후속 행정절차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무엇보다 악화 일로를 걷는 재정 여건이 발목을 잡았다. 용역 결과, 건립지 시·군 공모를 통해 부지매입비를 제외하더라도 순수 건축비만 872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지상 4층, 연면적 1만3000㎡ 규모의 시설을 짓는 비용이다. 개관 이후에도 매년 50억원 안팎의 운영비가 고정 지출돼 장기적 재정 부담도 만만치 않다. 올해 1회 추경에서만 1979억원의 지방채를 추가 발행할 만큼 세수 감소로 몸살을 앓는 경기도로서는 감당하기 버거운 액수다.

 

기존 국가 운영 시설과의 기능 중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충남 천안에 이미 방대한 규모의 독립기념관이 존재하는데,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경기도에 수백억원의 도비를 들여 대형 기념관을 신축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비판이다. “굳이 예산을 중복해 들여야 하느냐”는 냉정한 시선까지 지우지 못한 것이다. 숭고한 정신과 예산의 효율성, 가치와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도는 경기지역 독립운동사 연구와 사료 수집을 통한 ‘차별화’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국민 여론조사의 찬성 비율(80% 이상)을 강조하지만, 예산 효율성 측면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경기도 광교 청사에 게양된 ‘광복절 태극기’. 경기도 제공
지난해 경기도 광교 청사에 게양된 ‘광복절 태극기’. 경기도 제공

◆전면 재검토 및 장기 과제 전환 가능성

 

특히 민선 9기 도정에, 당면한 대규모 현안 사업들이 산적해 있다는 점이 악재다. 광역급행철도(GTX) 확충, 북부 균형발전, 돌봄·복지 확대 등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공약 사업들 사이에서 독립기념관 건립이 예산 우선순위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철도를 깔고 균형발전을 이루며 복지를 늘리겠다는 민생 공약들의 틈바구니에서 독립기념관이라는 이름 다섯 글자를 늘어놓는 건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다.

 

만약 사업이 지속 추진되더라도 문화체육관광부 협의와 행안부 타당성 조사, 설계 공모 등을 거치면 착공은 빨라야 2030년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동력을 잃은 돛단배처럼 이대로 표류하거나 긴 잠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도청 안팎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이유다.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과 기억은 소중하지만, 그 노력과 기억을 담을 그릇의 무게가 당장 삶을 짓누른다면 지도자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역사를 기리는 일과 도민의 오늘을 지키는 일, 그 엄중한 저울질 위에서 경기도 독립기념관은 지금 어느 방향으로 기울고 있을까.

 

도 관계자는 “인수위 업무보고와 판단 결과에 따라 향후 구체적인 사업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