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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볍씨부터 도마 위 굴비까지…K푸드 뿌리 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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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도마 위에 굴비 한 마리가 놓여 있다. 박수근의 1952년작 ‘도마 위의 굴비’는 거창한 잔칫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끼니를 준비하는 손길이다. 그 곁에는 3∼4세기 부산 기장군 고촌리에서 나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마가 놓인다. 1700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 마주한 두 전시품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이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압축한다. 밥상은 음식의 집합이 아니라 삶을 이어 온 방식이었다. 전시는 한국인이 안부처럼 건네는 말, “식사하셨어요?”에서 출발해 밥 한 그릇과 국, 반찬, 장과 나물에 깃든 한국인의 삶을 따라간다.

 

‘삼천 년 전 볍씨’, 벼농사가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청동기시대 집자리에서 출토된 불탄 볍씨이다. 이후 삼천 년 동안 우리는 쌀을 위한, 쌀에 의한, 쌀의 삶을 살아왔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삼천 년 전 볍씨’, 벼농사가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청동기시대 집자리에서 출토된 불탄 볍씨이다. 이후 삼천 년 동안 우리는 쌀을 위한, 쌀에 의한, 쌀의 삶을 살아왔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은 7월1일부터 10월25일까지 한국 식문화를 종합 조명하는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을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

 

51개 기관이 협력해 488건 684점의 전시품을 한자리에 모은 대규모 전시다. 보물 5건 5점, 국가민속문화유산 2건 6점도 포함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식문화를 이처럼 종합적으로 다루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는 K푸드가 세계적인 트렌드가 된 지금, 그 뿌리를 화려한 음식이나 특정 메뉴가 아니라 우리 삶 가까이에 놓여 있던 밥상에서 찾는다. 김치와 장, 나물, 국, 밥처럼 익숙한 음식과 조리 방식은 자연이 내어준 재료를 계절에 맞게 거두고, 저장하고, 발효하고, 함께 나눠 먹어 온 긴 생활의 결과다. 고고 유물, 조선 왕실 의궤, 옛 조리서, 회화, 민속 자료, 현대미술과 영상이 하나의 서사로 엮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들의 밥상’ 포스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들의 밥상’ 포스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시는 크게 두 흐름으로 구성된다. 1부 ‘삶과 함께 한 우리 밥상’은 우리가 어떻게 먹어 왔는지를 따라간다. 출발점은 밥이다. 여주 흔암리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불탄 볍씨는 쌀이 우리 밥상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시간을 상징한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나온 숟가락과 젓가락, 19세기 말 양반가 조리서 ‘시의전서’, 96종의 국물 요리법을 담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등은 밥과 국, 반찬이 어우러진 한식 상차림이 오랜 생활문화였음을 보여준다.

 

함께 먹는 밥상의 풍경도 눈길을 끈다. 김홍도의 ‘주막’과 ‘새참’, 김득신의 ‘강가에 모여 먹고 마시다’ 등 보물 세 점은 밥상이 집 안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주막에서, 들판에서, 강가에서 먹고 마셨다. 밥상은 때로 혼자의 끼니였고, 때로는 노동과 휴식, 공동체를 잇는 자리였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한 8일간의 일상식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등은 왕의 밥상에 담긴 계절과 통치의 의미를 전한다.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주막’. 주막에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의 모습을 진솔하게 포착한 김홍도의 풍속화이다. 패랭이 쓴 남자는 소반 위 큼직한 사발을 기울여 바닥까지 밥을 긁어먹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주막’. 주막에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의 모습을 진솔하게 포착한 김홍도의 풍속화이다. 패랭이 쓴 남자는 소반 위 큼직한 사발을 기울여 바닥까지 밥을 긁어먹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부 ‘자연이 빚은 우리 밥상’은 우리가 무엇을 먹어 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산과 들, 바다와 하늘이 내어준 식재료는 계절과 지역의 감각 속에서 밥상으로 들어왔다. 허균의 ‘도문대작’은 유배지에서 기억 속 팔도 별미를 기록한 17세기 미식 기록이다. 윤용의 ‘나물 캐기’와 박수근의 ‘봄’은 봄나물이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계절을 맞이하는 감각이었음을 보여준다.

 

‘불탄 들깨’. 청동기시대 집자리에서 매우 많은 양의 들깨 종자가 불탄 채 발견되었다. 분석 결과 재배종으로 확인되어 당시 사람들이 들깨를 길렀음을 알 수 있다. 작디작은 씨앗이지만, 이 안에는 아주 오래된 고소한 맛이 담겨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불탄 들깨’. 청동기시대 집자리에서 매우 많은 양의 들깨 종자가 불탄 채 발견되었다. 분석 결과 재배종으로 확인되어 당시 사람들이 들깨를 길렀음을 알 수 있다. 작디작은 씨앗이지만, 이 안에는 아주 오래된 고소한 맛이 담겨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저장과 손질, 발효와 양념의 문화도 전시의 중요한 축이다. 광주 신창동에서 출토된 기원 전후의 나무 문짝, 정월대보름 오곡밥과 묵나물 풍습을 기록한 ‘동국세시기’ 등은 계절의 풍요를 다음 계절로 이어 가려 했던 생활의 기술을 보여준다. 3∼5세기 불탄 콩 덩어리는 가장 오래된 메주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자료이고, 16세기 조리서 ‘주초침저방’은 젓갈을 사용한 김치 조리법을 전한다. 삼천 년 전의 불탄 들깨와 고려시대 청자 매병에 담긴 꿀은 양념의 긴 역사도 짚게 한다.

 

‘각종 해산물이 담긴 큰 항아리’. 경주 서봉총 둘레돌을 따라 줄지어 놓았던 큰 항아리에 청어, 방어, 돌고래, 복어 등 다양한 해산물이 가득 했다. 망자를 위한 화려한 제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각종 해산물이 담긴 큰 항아리’. 경주 서봉총 둘레돌을 따라 줄지어 놓았던 큰 항아리에 청어, 방어, 돌고래, 복어 등 다양한 해산물이 가득 했다. 망자를 위한 화려한 제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음식을 직접 맛볼 수 없는 ‘음식 전시’의 한계를 넘기 위한 장치도 마련됐다. 밥상을 차릴 때 나는 소리, 조리 과정 영상, 음식과 관련된 의성어·의태어, 조선 지식인이 즐긴 상추쌈 먹는 법 등은 관람객이 전시장 안에서 맛과 냄새를 상상하도록 돕는다. 가족 관람객을 위한 감상 카드와 식문화 전문가 인터뷰, 어린이·가족 특강, 강연토론회, 북토크, 학술대회, 2026 한식 페스타 등 연계 행사도 이어진다.

 

이번 전시는 오래된 볍씨와 왕실 의궤, 조리서와 풍속화, 도마와 장독, 현대미술을 통해 한국 식문화가 형성되고 이어져 온 과정을 보여준다. 관람객은 전시를 따라가며 밥상이 단순한 식사의 공간이 아니라 생활 방식과 자연, 공동체의 관계가 담긴 문화적 장면이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유홍준 관장은 “박물관이 밥상을 전시 주제로 삼는다는 것은 K푸드의 뿌리이자 우리가 매일 너무 당연하게 마주해 온 삶의 가장 가까운 풍경을 다시 보자는 제안”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의 밥상이 이 땅의 자연과 밥을 하늘로 여겨온 옛사람들의 노력 위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