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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의공정과효율] 승복의 조건, 공정한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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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부족으로 선거의 공정성 도마 위
규칙이 정교해도 절차가 불공정 땐 납득 불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아마도 ‘공정’이 아닐까. 공정 이슈에 특히 민감한 분야가 입시, 선거, 스포츠, 시장이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는 북중미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으나, 심판의 공정성을 두고 큰 잡음이 없는 점은 다행스럽다.

규칙은 모두에게 같아도 그걸 적용하는 과정은 심판마다 다르다. 어떤 주심은 작은 파울에도 가차 없이 카드를 꺼내 들고, 다른 주심은 어지간한 몸싸움은 경기의 일부로 여겨 휘슬을 아낀다. 하지만 잣대가 엄격하든 느슨하든 똑같이 적용되기만 하면 양 팀은 경기 결과에 승복한다. 하지만 한 팀에만 엄격한 ‘이중 잣대’를 들이대면 공정성 시비가 불거진다. 이때 억울한 쪽은 결과가 만들어진 과정을 의심하며 끝내 승복하지 못한다.

김형배 더킴로펌 고문 연세대 법무·경제대학원 겸임교수
김형배 더킴로펌 고문 연세대 법무·경제대학원 겸임교수 

우리에게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는 흠잡을 데 없는 클린 연기를 펼치고도 러시아 선수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국민이 결과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김연아가 졌기 때문이 아니라 채점의 공정성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보다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의심받은 탓이다.

지난달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지방선거의 공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선거란 패자가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에게 축하를 건네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나, 이번에는 어딘가 찜찜한 뒷맛을 남겼다. 특히 취업난에 시달리며 소득 양극화의 피해자로 여기는 2030 세대는 절차의 공정성이 흔들렸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거리로 나섰다. 이들에게 공정한 규칙과 규칙 적용의 공정성은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도 공정성은 뜨거운 화두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가맹본부가 가맹점주를, 거대 유통업체가 입점·납품업체를 괴롭히는 ‘갑질’이 끊이지 않는다. 이를 막기 위해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대리점법, 대규모유통업법까지 촘촘한 법망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법 규정의 취지와 달리, 실제 거래 과정에는 불공정한 관행이 뿌리내려 있다. 단가 후려치기와 일방적 계약 해지, 비용 떠넘기기가 버젓이 되풀이된다. ‘을’들은 함께 일군 성과의 배분에도 불만이 크지만, 거래 과정에서 거듭 마주하는 불공정에 더 깊이 좌절하고 분노한다.

규칙이 아무리 정교해도, 적용하는 과정이 불공정하면 사람들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잘 만든 규칙만으로 공정이 완성되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찍이 정치철학자 존 롤스도 “정의론”에서 결과보다 절차의 공정성을 강조했다. 무엇이 옳은 결과인지 미리 합의하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공정하게 설계된 절차를 충실히 따랐다면 그 결과 또한 정의롭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순수 절차적 정의’다. 결과를 미리 못 박는 대신, 누구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규칙을 비틀 수 없도록 절차부터 바로 세우라는 주문이다.

결과에 승복하려면 규칙이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공정한 규칙조차도 그걸 적용하는 절차가 불공정하면 누군가는 결과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사회는 분열된다. 절차가 공정하면 패자도 결과에 승복하고, 사회는 패배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다. 심판이 공정하면 진 팀도 박수를 보내고, 투표와 개표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면 낙선자도 결과에 승복한다. 결과는 누구나 다 만족시킬 수 없지만 공정한 절차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형배 더킴로펌 고문 연세대 법무·경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