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은 더 이상 자녀를 돌볼 수 없을 때다. 부모가 병들거나 세상을 떠나면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꾸려가기 어려운 발달장애인 자녀는 어디에 살고, 낮에는 무엇을 하며, 아플 때는 누가 병원에 데려갈 것인가.
세계일보는 지난달 22일 서울 용산구 사옥에서 성인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조인자씨와 이경아 도닥임 아동발달센터 센터장, 고령 발달장애인 주간이용시설을 운영하는 이진승 우리주간보호센터 센터장에게 ‘홀로 남겨지는 발달장애인 자녀의 삶’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부모에게 ‘슈퍼맨’이 되기를 강요하는 우리나라 복지체계의 한계를 지적하며, 국가가 발달장애인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개인별 맞춤 돌봄체계를 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맞춤형 돌봄체계 구성, 20년 걸려”
특수교육학 박사로 발달장애인 부모 상담을 진행하는 이경아 센터장은 “40세가 되어가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너무 답답해 부모 상담 서비스를 청한다”며 “그런데 ‘부모님들이 기대하는 세팅(24시간 돌봄체계)은 없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현실에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 이승기(30)씨가 혼자 남겨질 때를 대비해 뒀다. 집 근처 ‘그룹홈(장애인 공동 거주시설)’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막막하던 차에 발달장애인 부모 자조모임에서 “자리가 있다”는 연락을 받는 행운이 찾아왔다. 아들이 8살일 때 특수학교인 한국경진학교 학부모들이 주축인 자조모임 ‘기쁨터’와 인연을 맺고 출자금을 냈던 게 천운이었다. 이제 30세인 승기씨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경기 고양에 있는 그룹홈에서 6년째 생활하고 있다. 낮시간에는 그룹홈이 아닌 다른 시설을 이용해야 해 주간이용시설에서 시간을 보낸다.
문제는 오랜 기간 준비한 승기씨의 삶을 다른 부모들과 나눌 수 없다는 현실이다.
이경아 센터장은 “더 이상은 그룹홈에 새로운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없고 그걸 새로 만들려면 15년, 20년이 걸린다”며 “법인과 후원 조직들이 있고 신체·생활·인지기능이 비슷한 여러 명의 장애인들이 모임을 유지하기 위해 오랜 기간 맞춰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동생활과 근로가 가능할 정도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발달장애인 맞춤형이라는 한계도 있다.
34세가 된 조인자씨 아들은 ‘통제’를 견디지 못한다. 조씨는 아들이 돌봄주택이나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길 희망하지만, 그러려면 24시간 활동서비스를 지원받아야 한다. 보행이 불편해 화장실에 갈 때도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씨는 “여태까지 자유로운 생활을 했던 아들에게 24시간 돌봐주는 시설은 맞지 않는 것 같아 지역사회 안에서 24시간 돌봄 받을 수 있는 삶을 꿈에 그리지만, 24시간 돌봄체계가 돼 있는 곳은 아직까지 찾질 못했다”고 했다. 대부분의 시설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무한대기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자녀가 평생 24시간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장애인 고립·가족 삶 갉아먹는 현실
홀로 생활이 불가능하고 폭력성을 보이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삶은 더 막막하다.
평균 50세인 발달장애인 28명이 이용하는 우리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는 이진승 센터장은 최중증 발달장애인이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지내기 위해선 무엇보다 24시간·365일 돌봐줄 인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한 명의 여자 활동지원사가 3명의 장애인을 담당하면서 뇌병변 장애인의 화장실을 지원하니까 몇 년 뒤 허리가 나가더라”며 “외국은 뇌병변처럼 어려운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에게는 직원 3명이 붙는데 우리나라는 지원 대상의 장애 정도가 심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정해진 비율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원 인력 1명이 3명의 장애인을 돌보는 게 기본구조인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 등 해외에서는 개별 장애인 1명을 돌보기 위해 필요한 인력의 수가 정해져 있고 이 장애인이 어디에 가든 이 ‘비율’을 따라 지원한다.
이진승 센터장은 “2005년 영국 그룹홈에서 9개월 정도 일했는데 당시 6명의 직원이 4명의 장애인을 지원했다”며 “이런 그룹홈이 지역사회에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장애인이 원하는 곳을 선택해서 지낼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경증 장애인 위주인 우리나라 그룹홈과 달리, 영국 등 외국에서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이 그룹홈에서 24시간·365일 케어를 받는다”며 “경증 장애인은 혼자서 살아가는 ‘인디펜던트 리빙(independent living·자립생활)’을 하며 필요시 24시간·365일 전화를 통해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세 사람은 발달장애인 모두가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들과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않은 채 진행되는 탈시설 정책기조는 장애인의 고립과 가족의 삶을 갉아먹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발달장애인 부모 부담, 국가가 덜어줘야”
발달장애인 부모는 돌봄뿐만 아니라 돌봄체계의 설계도 오롯이 떠안고 있다.
조인자씨는 과거 30세가 된 아들의 주거급여를 받기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다가 “어려운 사람에게 주는 걸 왜 받으려 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 30세 이상 미혼 중증장애인은 부모와 함께 거주하더라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부모의 소득·재산이 아닌 본인 기준으로 수급 여부를 판단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주민센터 직원이 알지 못한 것이다.
조씨는 “결국 다른 주민센터에서 서류를 받아 주소지 관할 주민센터에 제출만 하라는 지인 조언을 따랐더니 주민센터 직원들이 ‘업무가 계속 바뀌어 잘 몰랐다. 죄송하다’고 하더라”며 “주민센터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주거급여 이용자가 잘 지내고 있느냐는 확인 전화가 오는데 전화하는 직원이 누구인지, 어디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모르니 그냥 ‘잘 지내고 있어요’ 하고 끊게 된다”고 전했다. 장애 등급을 바꿀 때도, 장애인콜택시를 신청할 때도 마찬가지로 주민센터에서 알려주는 건 없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알음알음 정보를 얻어야 했다.
이진승 센터장은 “센터에 다니는 발달장애인의 어머니 한 분이 무릎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활동 지원사와 등하원 서비스, 차량 이동 등을 스스로 다 알아봤다”며 “이것도 문의할 능력이 되니까 가능하지 그게 안 되는 분들은 ‘친척’이나 ‘아는 엄마’ 선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들은 기능과 욕구가 각기 다른 개별 발달장애인에게 맞는 복지 자원을 연결하고 생애주기별 로드맵을 짜줄 ‘설계사’가 필요하며, 국가가 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경아 센터장은 “정부가 만든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파편화된 정보만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데 보험을 설계하듯 사람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에서 이용할 수 있는 최선의 제도를 찾아야 한다”며 “하루 일상을 어떻게 쓸 수 있느냐, 동선을 어떻게 잡을 수 있느냐, 부모님이 있는 여부 등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예측하면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진승 센터장은 “일본 등 외국은 부모가 돌봄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 주거시설을 집에서 장애인 공동 거주시설로 전환할 수 있도록 교통 생활 체험, 지역사회 자원 연결 등을 지원해 주는 센터가 존재한다”며 “우리나라에도 장애인 자녀를 가진 부모의 문의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통합적인 센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