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유토피아/닉 보스트롬/김의석 옮김/까치/2만8000원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닉 보스트롬은 인공지능(AI)이 인류에 제기할 실존적 위험을 탐구한 선구적 철학자다. 2014년 ‘슈퍼인텔리전스’에서 초지능 AI의 위협을 경고한 그는 신작 ‘딥 유토피아’에서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인류가 초지능 AI가 불러올 기술적·도덕적·정치적 난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다면, 그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가 그리는 미래에서 노동과 희소성은 사라진다. 생산은 자동화되고, 인간이 실용적 목적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대는 막을 내린다. 저자가 주목하는 변화는 단순한 물질적 풍요가 아니다. 기술 발전은 인간 자신까지 변화 대상으로 만든다. 인간의 신체와 정신, 감정과 능력은 더는 고정된 조건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설계할 수 있는 영역이 된다. 인간은 주어진 본성을 받아들이는 존재에서 존재 방식을 만들어가는 존재로 바뀐다.
저자는 이런 미래를 ‘딥 유토피아’라고 부른다. 이 유토피아가 모두에게 낙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풍요와 자유만으로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인간은 무엇에서 삶의 가치를 찾을 것인가. 저자는 철학 논증과 사고실험, 다양한 사례와 경험적 연구를 통해 ‘도구적 필요가 사라진 이후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탐색한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새디어스 메츠(1968∼)의 논의를 검토하며 논지를 전개한다. 매츠에 따르면 의미 있는 삶은 세계 속에서 선(善)을 실현하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활동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초지능 AI가 인간보다 모든 일을 더 잘 수행하는 사회에서는 인간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역할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저자는 선을 사랑하고 경험하는 것만으로 선을 지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딥 유토피아의 삶이 수동성을 뜻하는 것만도 아니다. 향상된 인지 능력과 발전한 AI 기술은 인간에게 지금보다 훨씬 깊은 지적·정서적·미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