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선 16% 더 비쌌다.”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가 나스닥 데뷔 첫날 국내 본주보다 약 16% 높은 가격에 거래를 마쳤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대표주를 직접 담으려는 미국 투자자의 수요가 확인된 가운데 두 시장의 가격 차이가 얼마나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다우존스 마켓데이터에 따르면 10일(현지시간) 나스닥에서 SK하이닉스 미국예탁주식(ADS)은 168.49달러에 마감했다. 공모가 149달러보다 13.08% 높은 가격이다. 장중에는 177달러까지 치솟았다.
SK하이닉스 ADS 10주는 국내 보통주 1주에 해당한다. 10일 원·달러 환율 1499.15원을 적용하면 ADS 종가를 본주 1주로 환산한 가격은 약 252만6000원이다.
같은 날 유가증권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218만원에 마감했다. 단순 비교하면 미국 ADS가 국내 본주보다 15.9% 비싸게 거래된 셈이다.
다만 첫날 벌어진 16%의 가격 차를 그대로 ‘미국 프리미엄’으로 단정하긴 어렵다. 한국 증시는 미국장 개장 전에 문을 닫는다.
국내 증시 마감 이후 반도체 업종과 미국 기술주가 움직인 만큼 이 흐름이 ADS 가격에 먼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 첫날 나타난 15.9%의 격차에는 두 시장의 거래시간 차이도 포함돼 있다는 뜻이다.
ADR은 해외 기업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해 미국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예탁증서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 증시에서 사고파는 증권은 ADS이고, ADR은 ADS를 증명하는 증서다. 시장에서는 두 용어를 사실상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SK하이닉스 ADS 1주는 국내 보통주 0.1주를 나타낸다. 같은 기업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만큼 환율과 비용을 제외하면 두 가격은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격 차가 벌어지면 싼 시장에서 사고 비싼 시장에서 파는 거래가 발생하면서 격차가 좁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SK하이닉스 본주와 ADS를 오가는 길이 항상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가 ADS를 예탁기관에 반납하고 국내 보통주를 인출하는 것은 가능하다. 반대로 국내 본주를 예탁해 새로운 ADS를 받는 과정은 자동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회사와 예탁기관의 절차를 거쳐야 하고 법령이나 예탁계약에 따라 주식 예탁이 제한될 수도 있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신고서에도 ADS를 반납해 보통주를 인출한 뒤 해당 주식을 다시 예탁하더라도 ADS를 재발급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적혀 있다.
이 같은 비대칭성은 가격 차를 좁히는 거래를 어렵게 만든다. 미국 투자자의 매수세가 강한데 ADS 공급이 곧바로 늘지 않으면 미국 시장에서 웃돈이 붙을 수 있다.
미국 투자자의 접근성도 가격 차를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SK하이닉스 본주를 사려면 한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거래 계좌와 원화 환전 등이 필요하다. 거래시간도 미국과 다르다. 반면 ADS는 미국 증시에서 달러로 거래할 수 있어 현지 투자자의 진입 장벽이 낮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AI 반도체 핵심 기업으로 꼽힌다. 미국 시장에는 엔비디아와 마이크론 등 AI·반도체 종목에 투자하는 자금이 두텁다. 이들 투자자가 미국 거래시간에 SK하이닉스를 직접 편입할 수 있게 되면서 첫날 매수세가 몰렸다는 분석이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이번 공모에서 ADS 1억7790만주를 주당 149달러에 팔아 약 265억달러를 조달했다. 외국 기업의 미국 증시 주식 공모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공모 단계부터 주문이 몰리며 미국 기관투자자의 높은 관심이 확인됐다.
대만 TSMC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TSMC는 대만 본주와 미국 ADS가 함께 거래되지만 두 시장의 투자자 구성과 거래 편의성, 전환 절차 등의 차이로 미국 ADS에 웃돈이 붙는 구간이 반복됐다. AI 반도체 투자 열기가 강해진 뒤에는 가격 차가 두 자릿수로 벌어진 적도 있다.
다만 SK하이닉스의 첫날 가격 차가 TSMC처럼 장기간 이어질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SK하이닉스가 SEC에 제출한 F-6 등록신고서에는 최대 17억8000만ADS가 등록돼 있다. 이는 예탁증서 발행을 위한 증권 등록상의 한도다. 실제로 ADS가 추가 발행되려면 그만큼의 국내 보통주가 예탁돼야 하고 회사와 예탁기관의 절차도 거쳐야 한다.
등록 물량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ADS 공급이 즉시 늘어난다고 볼 수도, 반대로 전환이 막혀 프리미엄이 고착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두 시장의 가격 차를 겨냥한 투자 전략도 나왔다.
UBS는 지난 7일 고객들에게 SK하이닉스 ADS를 사고 국내 본주를 매도하는 거래를 제시했다. 미국 ADS가 국내 본주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될 가능성에 무게를 둔 상대가치 전략이다.
미국 시장에서 SK하이닉스를 직접 편입하려는 글로벌 투자자 수요가 강한 반면 국내 본주가 ADS로 전환돼 공급되는 데에는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는 가격 차가 반드시 줄어든다는 전제에서 이뤄지는 무위험 차익거래와는 다르다. ADS 공급이 늘어 미국 가격이 떨어지거나 국내 본주가 미국 가격을 따라 급등하면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본주 공매도에 필요한 주식 대여 비용과 환율 변동도 수익률에 영향을 준다.
국내 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 형성된 높은 가격이 국내 본주로 얼마나 전달되느냐다.
SK하이닉스 ADS는 첫날 임시 티커 ‘SKHYV’로 조건부 거래됐다. 오는 13일부터 정식 티커 ‘SKHY’로 바뀌어 정규 방식으로 거래될 예정이다. 국내 증시도 같은 날 다시 문을 연다.
첫날 나타난 약 16%의 격차가 국내 본주의 상승으로 좁혀질지, 미국 ADS 가격이 내려오면서 해소될지 가늠할 첫 시험대다. 첫 거래일의 흥행보다 두 시장 사이의 가격 연결이 얼마나 원활하게 작동하느냐가 향후 프리미엄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