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관 품질검증서만 믿고 확인도 안 해
5일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원전 부품 납품업체 8곳은 2003년부터 해외 품질검증기관이 발급한 것처럼 품질검증서를 위조해 7682개의 부품을 공급했다. 원전을 직접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까막눈이었다.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지난 9월 말 외부 제보를 받은 뒤 자체 조사를 거쳐 해외 검증기관에 확인하고서야 위조 사실을 밝혀냈다.
문제는 한수원이 10년이 되도록 주요 원전 부품에 대해 품질을 검증해준 해외기관에 단 한번도 검증서 진위에 대한 확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관행적으로 자체 지정한 해외 품질검증기관에서 발급한 인증서만 들고 오면 확인조치 없이 부품을 구매했던 것이다. 문제가 된 부품인 퓨즈, 스위치, 다이오드 등은 일반 산업용으로도 많이 쓰여 미국 업체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들이고 있다는 게 한수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납품업체가 제시한 검증서만 믿고 고장을 일으키면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원전 부품의 진위를 확인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무환 포항공대 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는 “납품업체가 인증서를 제출하는 제도를 바꿔 한수원이 바로 송부받도록 해야 한다”며 “아울러 한수원도 안전의식을 높일 대대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5일 미검증 부품이 대량 사용된 것으로 드러나 가동 중지된 영광 원자력발전소 5·6호기. 세계일보 자료사진 |
주무·감독 부처인 지경부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수원의 품질관리체계 전반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한수원 자체의 품질검증 기능을 강화하고, 국내 인증·시험기관을 활용해 원전 부품을 다시 검증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해외 검증기관이 한수원에 직접 검증서를 송부토록 해 위조를 원천 차단하겠다고 덧붙였다. 한수원도 이번에 문제가 드러난 부품 외에 다른 품목의 검증서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사후약방문’이란 지적을 면할 수 없어 보인다. 한수원이 관행을 앞세워 10년 넘게 원전 부품에 대한 확인작업을 소홀히 했지만, 지경부는 물론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도 문제 삼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전문인력 양성을 비롯한 원전 관리를 근본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군철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늘어나는 원전에 비해 안전을 책임질 규제인력은 한정된 현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규제인력을 육성하고, 교육을 통해 이들의 능력을 높이면 고장과 비리를 훨씬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무환 교수도 “원전 건설이 완료되기 3∼4년 전부터 규제·운영인력을 미리 육성해 대비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계식 기자 cul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