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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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경제부흥·포클랜드 전쟁 승리 이끈 여장부

마거릿 대처는 누구…?
8일(현지시간) 사망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1979년부터 12년 동안 최장기 집권을 한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다. 보수적인 영국 정가에서 서민 출신에다 여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총리의 자리에 오른 그는 강한 정책 추진력과 카리스마로 ‘철의 여인’으로 불렸다. 

대처 전 총리는 1925년 영국 중부 그랜덤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옥스퍼드대학 화학과를 졸업하고 1951년 데니스 대처와 결혼했다. 이후 쌍둥이 남매를 낳고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대처는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59년 보수당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의원이 된 지 2년 만에 연금·국민보험부 정무차관에 발탁됐다. 이후 주택, 연금, 재무, 에너지 담당부처의 요직을 거쳐 교육·과학장관에 기용됐다. 1975년에는 보수당 당수로 선출되면서 영국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됐고, 이어 1979년 보수당이 집권 노동당을 누르고 승리하면서 영국 첫 여성 총리에 취임했다.

대처가 집권할 당시 영국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 잦은 파업 등으로 실질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등 ‘영국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처는 복지예산 등 정부 지출 규모를 대폭 삭감하고 탈규제,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경제구조를 분배에서 성장 중심으로 바꿔 영국의 경제부흥을 이끌었다. 그는 1984년 대대적인 탄광 노조의 파업을 강경 진압하면서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강력한 지도력으로 영국병을 고쳤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실업자를 양산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대처리즘’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레이거니즘(레이거노믹스)’과 함께 세계 경제의 주류로 등장했다.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세계 경제를 지배해온 온 신자유주의의 서막이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그를 탁월한 정치인으로 평가하면서 “영국에 그가 만든 변화는 적어도 1997년까지 노동당 정부에서 유지됐고 전 세계 정부에서 채택됐다”고 말했다.

대처는 외교·안보부문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1982년 아르헨티나 근해의 영국령 포클랜드섬을 아르헨티나가 무력 점령하자 국내의 반발을 일축하고 해군 기동부대를 파견한 것이다. 결국 아르헨티나가 손을 들면서 포클랜드 전쟁은 끝났고 대처의 인기는 치솟았다.

1983년과 1987년 실시된 총선거에서 보수당이 잇따라 승리하면서 대처는 3기를 연임했다. 그는 노동, 교육, 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독단적인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1990년 유럽 통합 반대입장을 고집하다가 당 지도부의 반발로 자진 사임했고 이듬해 5월 정계에서 은퇴했다.

2011년에는 일대기를 다룬 영화 ‘철의 여인’이 개봉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애도의 물결 속에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전세계는 ‘위대한 자유의 투사’를 잃었고, 미국은 진정한 친구를 잃었다”면서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당대 세계 정치사의 뛰어난 지도자였다”면서 “유럽 냉전의 분단을 극복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역시 “영국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이 타계했다”며 조의를 표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역시 EU의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기렸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