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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 안하고 소통하니 ‘돌풍’ 불더라”

입력 : 2010-09-12 22:22:14
수정 : 2010-09-12 22: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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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제주 박경훈 감독 인터뷰
U-17 월드컵 부진 책임 그라운드 떠나
2년간 대학강단 서며 이론공부 몰두
K리그로 복귀후 ‘즐기는 축구’ 추구
작년 14위팀이 선두로 대반전 드라마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프로축구 K-리그에서 제주 유나이티드가 선두를 달리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예상 밖의 대선전이다. 제주는 최근 10여년간 K-리그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별 볼일 없는 팀’이었다.

모기업 SK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제주는 2006년 연고지를 경기도 부천에서 옮겨 화제를 일으켰다. 1982년에 창단된 프로축구 1호팀답지 않게 지난해 9월에는 포항 스틸러스와의 홈경기에서 1-8로 대패하며 K-리그 역대 최다 스코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런 탓에 브라질 출신의 알툴 감독이 시즌 중에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 놓기도 했다. 제주는 지난해까지 늘 하위권을 맴돌았다. 2007년 FA컵 4강에 오른 게 그나마 최고의 성적이었다.

1년이 지나 프로축구 21라운드까지 치른 12일 현재 K-리그에서는 극적인 반전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다.

지난해 14위에 머물렀던 제주의 성적표를 감안한다면 경이로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올시즌을 앞두고 선수 영입에 남들처럼 큰 돈을 들인 것도 아니다. 지난해 19세 이하 월드컵에서 활약하던 미드필더 구자철(20)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스타 플레이어도 없다.

국가대표 부동의 센터백인 조용형도 본인의 희망대로 중동클럽으로 보내줬다. 축구는 혼합심의 스포츠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탓에 요즘에는 4000∼5000명의 관중이 찾아들어 ‘제주의 신바람’ 축구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박경훈(49) 감독이 제주 감독으로 부임할 당시만 해도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박 감독은 2007년 수원에서 열린 17세 이하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부진한 성적과 함께 예선탈락하며 혹독한 대가로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고, ‘실패의 아이콘’으로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로 지도자의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하지만 박 감독은 보란 듯이 제주를 확 바꿔놨다. 과거 K-리그 포항에서 10여년간 뛰었고,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박 감독은 자신감을 상실하고 패배주의에 빠져 축 처진 팀 분위기를 추스르고 일신했다. 2년간 대학강단에 서기도 했던 박 감독은 “많은 걸 되돌아보며 판을 더 크게 볼 수 있는 눈을 키웠고, 정말 많은 걸 배웠다”고 말한다. 박 감독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 단결한 것이 제주 상승세의 가장 큰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감독과의 일문일답.

―프로축구 제주의 선전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그 비결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가.

“최근 성적이 좋으니 주위로부터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 굳이 꼽으라면 우리는 ‘즐기는 축구’를 추구하고 있다. 최고 무대인 프로에서 뛰는 선수들의 기량에는 큰 차이가 없다. 선수들 개개인이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장점을 이끌어 내 11명이 일치심을 갖고 조화롭게 경기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리고 선수들이 실수를 해도 다그치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격려를 많이 해준다. 그런 덕택에 선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한 것 같다.”

―제주가 환골탈태를 했다. 확 바뀌게 된 원인은.

“사령탑을 맡기 전 지난해 시즌 막판 제주의 경기를 지켜봤는데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도 없었고, 자신감을 상실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정교한 전진패스보다는 백패스나 뻥축구가 많았다. 제주는 바람, 돌, 여자가 많은 삼다도라 하지 않는가. 그래서 바람과 같이 빠르고, 돌같이 강하고, 여자같이 아름다운 축구를 구사하려는 게 우리의 목표다.”

―아직 시즌은 끝나지 않았지만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를 예상했는가.

“감독을 정식으로 맡은 지 이제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부임 첫해인 만큼 목표는 승점 45점에 6강 플레이오프 진출로 잡았다. 하지만 벌써 승점 40점을 넘어섰다. 결코 우승을 꿈꾸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면서 초심을 잃지 않도록 하겠다. 선수와 감독 모두가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는 절로 찾아오기 마련이다.”

―K-리그에서 감독은 처음이다. 제주가 현재 추구하는 축구 스타일의 얼마 정도를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하는가.

“빠르고 아름다운 스페인식 축구는 세계 축구의 흐름이다. 모래알 같던 조직력은 단단해졌고, 심심찮게 역전승을 만들어내는 등 뒷심도 강해졌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내가 추구하는 축구 스타일의 60∼70%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더욱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올시즌 홈에서는 단 한차례도 패하지 않았다. 비결은.

“홈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프로의식을 선수들에게 심어줬다. 홈팬에게 열정과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승리라는 선물을 통해 즐거움을 줘야 하는 게 진정한 프로다. 홈경기 때에는 선수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라고 강조한다. 그 결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난봄 처음 프로감독을 맡았을 때 어떤 각오였나.

“2007년 17세 월드컵 이후 축구판을 떠났다. 전주대에서 축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론공부도 많이 했다. 지도자로서 다시 축구판에 돌아올 기회가 없을 줄 알았다. 제주구단으로부터 감독직 제의를 받은 뒤 ‘군림’ 아닌 소통하는 지도자가 되고자 맹세했다.”

글=박병헌, 사진=송원영 기자 bonanza7@segye.com
■박경훈 감독 프로필
●1961년 1월 서울 출생
●서울 수유중―대구 청구고―한양대
●1984년 프로축구 포항 아톰스 입단, 1980∼90년 청소년및 국가대표
●1996년 전남 드래곤즈 코치, 2002 부산 아이파크 코치
●2007년 FIFA 17세이하 월드컵 대표팀 감독
●2008년 전주대 축구학과 교수
●2009년 11월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