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시절인 1994∼95년무렵 이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시 미국 측에도 먼저 제의했었죠. 그런데 미국은 ‘한국은 아직 FTA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고 거절했죠.”
정의용 열린우리당 의원(사진)은 “모멸감을 느꼈다”는 말로 당시의 소회를 대신했다. 1998∼2000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을 지낸 정 의원은 99년 12월부터 2005년 5월까지 칠레와의 FTA 1∼3차 협상에서 수석대표를 맡았다.
“(미국의 퇴짜를 맞은 뒤) 마침 칠레로부터 제안이 왔다. 칠레 경제는 우리에게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고 판단됐다. 칠레는 다수의 FTA를 통해 협상 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양자 협상에 대해 배울 게 많을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연습게임’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당시 칠레 대표단이 20여명이었던 데 비해 첫 FTA 협상에 임한 한국 대표단은 100여명에 이르렀다. 이과정에서 협정문 형식과 양자대화 방식에 이르기까지 협상전반에 걸쳐 많은 지식과 노하우를 축적했다고 한다. 첫 경험치고는 ‘그런 대로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 협상이지만, 우리 정부는 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농민의 격렬한 반대로 겪었던 내부 진통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농림부도 칠레산 사과와 배를 자유무역 품목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문제는 이러한 입장 차이를 두고 내부 조율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러 분야에 걸친 포괄적 협상을 하게 되면 ‘다 양보하더라도 우리 분야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게 모든 부처의 공통 주장이다. 부처 간 조율을 위한 장관급 회의에서도 결정이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한데, 청와대에서도 판단을 내리기가 부담되는 모양인지 다시 장관급으로 내려오는 게 대부분이다. 이렇게 하다가 결국 내부 결정이 안 된 상황에서 협상에 나가고, 그러다 보니 협상이 어려워진다.”
칠레는 반대로 한국 공산품의 공세를 크게 우려했다. 이 때문에 정 의원은 마리오 마투스 칠레 대표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 직접 칠레 경제단체를 찾아 (FTA 체결이) ‘윈윈 게임이라는 점을 설득하기도 했다.
또 마투스 대표가 한국과의 FTA 체결을 발표한 뒤 칠레 대통령은 “이 사람(마투스)이 우리 국익을 신장시킨 영웅”이라고 한껏 치켜세우기까지 했다고 한다. 국회 비준 과정에서 극심한 산통을 겪었던 우리와는 대조되는 장면이다.
특별기획취재팀=주춘렬·김귀수·박은주·김창덕 기자 special2@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