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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성 순례자가 예루살렘 ‘무덤성당’ 안에 있는 벽화 앞에서 예수의 못박힌 손을 두손으로 감싼 채 눈물로 기도하고 있다. |
19일 오후 5시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해 버스로 45분 거리의 중앙산악지대 예루살렘 시가지에 접어들었다. 유대인 밀집지역인 서예루살렘은 조용한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이 많이 사는 동예루살렘은 분주해 보였다. 때마침 유대인들은 안식일(금요일 해질 녘부터 토요일 해질 녘까지)이 시작돼 업무를 중단하기 시작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라마단 절기여서 금식을 끝내고 외식을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전체 인구 678만명 가운데 유대인 520만명, 회교도 100만명, 기독교인 13만5000명, 기타 41만5000명이 거주하는 이스라엘은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어우러져 작은 지구촌을 방불케 한다. 특히 유대인들의 ‘안식일 지키기’는 택시조차 멈춰 설 정도로 철저하다.
예수의 가르침은 당시 개혁적인 것이어서 유대교인들은 등을 돌렸지만, 제자들은 ‘기독교도’로 불리며 죽음을 무릅쓰고 스승의 가르침인 ‘복음’을 전파했다. 결국 313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국교로 공인된 기독교는 유럽과 미국 등 세계 열강을 등에 업고 세계 많은 나라의 정치·교육·문화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기독교 안에서만 구원이 있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은 예수의 가르침과는 달리, 이웃 종교와 갈등을 빚은 것도 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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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가 죽기 전 처절하게 기도했던 겟세마네 동산 위에 16개국이 힘을 모아 세운 ‘만국교회’. 왼쪽의 올리브 나무(감람나무)들은 수령이 2000년을 넘어 예수 생존시 있던 것으로 알려진다. |
3000년 전 다윗이 도읍으로 정했던 고대도시 예루살렘은 기독교뿐 아니라 유대교와 이슬람교 등 유일신을 신봉하는 세계 3대 종교의 ‘정신적 고향’으로 불린다. 유대인들은 같은 민족인 예수를 구세주로 믿지는 않지만, 조상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받치려 함으로써 야훼(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보여줬던 모리아산이 있는 곳이고, 이슬람교 역시 선지자 무함마드가 승천한 곳이다.
예루살렘은 곳곳에 예수의 발자취가 서려 있지만, 크게 3곳의 성지를 꼽을 수 있다.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예수 무덤이 있던 곳에 세워진 ‘무덤성당’과 십자가를 지고 걸어갔던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 또 하나는 예수가 죽음을 앞두고 처절하게 기도했던 성 밖 겟세마네동산에 세워진 ‘만국교회’가 그곳이다. 예루살렘 성 안은 팔레스타인인의 거주지여서 복잡하기 짝이 없지만,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는 크리스천들의 표정은 진지하다. 현재의 예루살렘 성에서 헤롯왕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서쪽 성벽, 이른바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의 성지이고, 그 안의 지성소가 있던 자리에는 이슬람교의 3대 성지이자 가장 아름답다는 ‘황금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 성 안은 활기차고 평화스럽다.
지구 수면보다 200m나 아래에 있는 동북쪽 여리고 지역을 통과해 국경지역 요르단강을 따라 북쪽으로 200km가량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는 갈릴리 호수 주변에는 예수가 산상 설교를 했던 장소로 알려진 팔복산에 세워진 팔복교회, 예수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곳에 세워진 ‘오병이어교회’ 등이 있다. 개신교 신자들은 갈릴리 지역 순례에서 더욱 열광하고 은혜를 받는다고 한다. 예루살렘에는 가톨릭을 상징하는 기념 성당이 즐비해 낯선 데 반해, 갈릴리 지역의 성지들은 산이며 호수가 자연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애착이 가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돌아보는 선상 체험은 가슴을 툭 터지게 하는 감동을 자아낸다. 해안가가 완만해 직접 호수를 거닐어 보니 또 다른 감흥이 느껴졌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갈수록 종교를 기피하고 있다고 한다. 정통 유대인들은 30%에 그치고, 나머지는 유럽의 기독교인들처럼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율법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고 할까. 밤에 예루살렘 신시가지 벤야후드 거리에 나가보면 자유와 낭만, 열정이 넘치는 ‘리틀 유럽’을 느낄 수 있다. 젊은이들은 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부른다. 반갑게도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한국인 개신교 성도 10여명도 노래와 악기로 찬양하며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수는 자유스럽고 순수한 청년이었다. 그는 한 번도 권력 위에 있지 않았고, 오히려 힘있는 자, 권력자를 싫어했다. 그는 늘 가난하고 소외된 자 편에서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고 복을 빌어주었다. 지금은 많이 변모했지만, 이스라엘 전역은 아직도 황량한 광야 지대다. 예수의 공생애 노정을 추적해 보노라면 하나님은 오직 광야에서 만날 수 있다. 외롭고 험난해 보이는 그 광야에서 예수의 이웃 사랑의 가르침은 용솟음쳐 올랐다.
예루살렘=글, 사진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