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속삭임이다. 마음에 드는 대상에게만 속삭여도 좋다. 그 대상을 찾아 내밀한 언어로 말하고, 생각나면 찾아보는 과정이다. 전북 내륙에 자리한 마이산(馬耳山)은 자주 찾아도 질리지 않는 산이다. 산세가 결코 단조롭지 않다. 마이산을 품은 진안은 한국 남부지방 산세의 시작이면서 물길의 시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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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안까지 500리 넘게 달려가야 하는 섬진강의 시원 데미샘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
쌍을 이룬 마이산은 보는 장소와 계절에 따라 감흥이 사뭇 다르다. 남쪽에서 보면 봉우리 중턱 급사면에 타포니(Tafoni) 형상이 나타난다. 폭격 맞은 것처럼 움푹 팬 굴들의 모습이다. 타포니는 바위 내부가 팽창하면서 표면을 밀어내 만들어진 지형이다. 바위 표면에서 시작되는 일반적인 풍화작용과는 전혀 다른 과정을 거쳤다. 빙하기와 한랭기에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마이산에서는 간혹 민물고기 화석이 발견된다. 담수호였다는 이야기다. 마이산이 담수호였던 시기는 중생대 후기 1억년 전까지. 당시 호수였던 진안고원에 쓸려온 모래와 자갈 등이 퇴적해 만든 것은 2000m 두께의 역암층. 7000만년 전 이 역암층이 지각운동으로 융기한 뒤 차별침식에 따라 뾰족한 봉우리로 애초와 모양을 달리하게 됐다.
신라시대와 조선 초기까지 서다산, 용출산, 속금산으로 이름을 달리했던 마이산이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조선 태종 때. 태조 이성계가 고려말 이 지역을 지나다 산의 모습이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환경 변화와 극적인 역사를 경험한 마이산은 계절마다 이름도 다르다. 돗대봉, 용각뿔, 마이산, 문필봉. 그러고 보니, 우리 땅에서 계절마다 이름을 달리하는 곳은 대개 명산이다. 이름을 가진 한반도 제1의 명산 금강산 4계의 이름만 봐도 그렇다. 금강산은 봄에 그리 불리다가 여름에는 풍악산으로 이름을 달리한다. 가을과 겨울에는 봉래산과 개골산으로 계절의 자태를 뽑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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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마이산 석탑은 사람이 만든 걸작이다. 폭풍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고 아슬아슬한 형태로 오랜 세월을 견뎌온 과정이 사람의 인생과도 닮아 있다. |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로는 진안은 구름보다도 안개가 자욱하다. 주천면과 상전면 등 1읍 5개면의 상당 지역이 수몰되면서 만들어진 인공 담수호인 용담호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다. 댐 주변 주민들이 변한 자연환경 때문에 고생한다고 한다. 도시에 식수를 공급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고향을 잃고, 마음대로 물을 쓰지도 못하며 불편한 생활을 한다. 댐 주변의 수증기 양이 많고 아침이면 안개 끼는 날이 잦다. 무릎과 팔목 등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주민들의 처지에 마음이 아프다. 용담호 주변 도로가 호수의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삼으면서 낭만의 길을 만들기까지 농민들의 희생과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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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이 사양저수지에 자신의 몸을 투명하게 비추고 있다. |
백두대간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인 마이산에는 자연석으로 축조한 석탑군이 눈길을 끈다. 마이산이 이름을 알린 것도 애초 120기가 넘었던 탑들 덕택이었다. 이제는 80기 정도가 남아 있지만, 폭풍우가 몰아쳐도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산길만이 아니다. 진안은 물길의 시작이기도 하다. 골이 있는 곳에는 계곡이 있는 불문의 진리 때문만은 아니다. 진안의 계곡은 높지 않지만, 남해로 빠지는 섬진강이 연원을 두고 있다. 서해로 빠지는 금강은 이웃한 장수군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진안 사람들이 데미샘을 섬진강 발원지로 주장할 때, 이웃 장수군에서는 수분재(水分峙)라고 우겼다. 마이산 동쪽과 서쪽에서 떨어지는 물이 각기 금강과 섬진강으로 가고, 수분재 남쪽과 북쪽에서 떨어지는 물이 섬진강과 금강으로 가는 상황이었으니 주장이 엇갈릴 만했다. ‘택리지’나 ‘연려실기술’이 섬진강의 발원지를 진안으로 보았지만, 장수 사람으로서는 수긍하기 힘들었다.
데미샘은 하천연구가의 노력으로 발견됐다. 1983년 1월 이곳을 찾은 하천연구가 이형석 선생이 원신암 마을을 찾았다가 산길이 끝나갈 무렵 마른 계곡 어디에서 물소리를 들었다.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고 해서 천산데미라 불리던 봉우리 아래에서였다. 마을 주민과 함께 샘물을 다시 찾아 데미샘이라 명명했다. 역사는 이렇게 작은 물줄기와 작은 발견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진안에서 발원하는 섬진강은 아기자기한 마을을 품을 뿐, 큰 평야를 벗삼지 않는다. 섬진강의 최장 발원지는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 마을의 데미샘. 3개 도와 10개 시·군에 걸쳐 220km를 흐르는 한국에서 4번째로 긴 강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데미는 ‘더미’의 다른 말로 호남에서 봉우리라는 뜻으로 쓰인다.
진안=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