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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약탈 문화재 반환운동 첫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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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궤 반환 의미
1965년 163종 이후 45년 만의 ‘역사적 반환’
‘범위·절차 협상’ 日 단서조항 달 땐 진통 우려
일본이 조선왕실의궤 등의 도서를 반환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동안 시민단체나 국회 등에서 꾸준히 추진한 약탈 문화재 반환운동의 첫 결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반환이 성사되면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 때 궁내청 소장 도서 163종 852책을 돌려받은 데 이어 45년 만의 ‘역사적 반환’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반환 도서 범위와 절차에 관한 협상은 이제 시작인 만큼 당국의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담화문이 발표된 10일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는 “민간단체의 환수 노력이 성과를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위원회 김의정 공동대표는 “2006년 의궤 환수운동을 시작하면서 올해 8월 환수를 목표했다”며 “이는 경술국치 100년인 올해 의궤를 돌려받지 못하면 앞으로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반환 도서 목록으로 거론되는 일본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의궤들. 왼쪽부터 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 보인소의궤에 실린 대조선국주상지보(大朝鮮國主上之寶)의 그림, 선원보략수정의궤(璿源譜略修正儀軌).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제공
환수위 사무처장인 혜문 스님도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정부가 나설 수 없었던 상황에서 환수위 등 민간단체가 일본 의회 의원들을 만나 면담과 설득 작업을 벌인 결과, 이들의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이 문제가 급진전했다”고 말했다. 환수위 측은 앞으로 (가칭)조선왕실의궤환국위원회를 꾸려 구체적인 환국 절차를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문화재청은 신중한 입장이다. 박영근 문화재활용국장은 “담화문이 원론적인 수준인 만큼 향후 궁내청과의 실무협상을 해봐야 구체적인 내용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담화문에는 반환도서를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하여 반출되어 일본 정부가 보관하는 조선왕조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라고만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궁내청 쇼로부에는 639종 4678책의 한국 전적이 소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는 조선왕실의궤 81종 167책이 있으며 대한제국의 ‘제실도서지장(帝室圖書之章)’이란 장서인이 날인된 제실도서 소장본 38종 375책, 조선 초기부터 왕실에서 소장했던 ‘경연(經筵)’ 인(印)이 찍힌 3종 1책 등이 일본의 불법 반출이 명확한 전적으로 반환대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제실도서는 조선의 의학과 관습, 군의 역사 등을 기록한 책으로 조선총독부 관리들에 의해 상당수가 일본 왕실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는 현재 궁내청 외에도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모은 ‘오구라 컬렉션’ 1856점을 포함해 도쿄 국립박물관에 6751점, 국회도서관 6748점, 교토의 오타니대학 5605점 등 모두 6만1409점의 한국 문화재가 소장됐다.

문화재청은 외교부 등과 협의해 반환 절차에 착수한다는 입장이나 실무협상에서 일본이 ‘조선왕실의궤만으로 반환도서를 국한한다’ 등의 이런저런 단서조항도 달 수 있는 만큼 진통도 우려된다. 일본 정부는 ‘반환’보다는 ‘인도’라는 형식을 취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이들 도서는 조선왕실이 소장했던 것이 명백하고 식민지 치하에서 총독부를 통해 일본으로 반출됐을 것임이 확실한 만큼 이들 모두 우리의 반환 추진 대상이라는 것을 일본에 알리고 한꺼번에 환수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조선왕실의궤란

왕실의 혼사·장례·잔치 등 주요 의식과 행사 준비과정 등을 시기·주제별로 자세히 기록하고 그림으로 나타낸 서책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중앙도서관 등 국내 9개소에 보관된 3563책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조선은 1392년 건국 초기부터 의궤를 만들었지만 임진왜란으로 거의 소실됐고,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것은 1601년(선조 34년) 만들어진 의인왕후의 장례에 대한 것이다. 오대산과 태백산·정족산 등에 분산 보관한 것을 일본 조선총독부가 일제 강점기인 1922년 일본으로 반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 총리 담화 요지

올해는 일한(한일) 관계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해입니다. 정확히 100년 전 8월 일한(한일) 병합조약이 체결돼, 이후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됐습니다. 3·1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도 나타났듯이, 정치적·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역사에 대해 성실하게 임하고자 합니다.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보는 것에 솔직하게 임하고자 합니다.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식민지 지배가 가져다준 많은 손해와 고통에 대해 여기에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기분(심정)을 표명합니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앞으로 100년을 바라보면서 미래지향적인 일한(한일) 관계를 구축해 갈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실시해 온 사할린 한국인 지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 반환 지원이라는 인도적 협력을 앞으로도 성실히 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거쳐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하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에 대해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가까운 시일에 이를 반환하고자 합니다.

일한(한일) 양국의 유대가 더욱 깊고, 더욱 확고해지는 것을 강하게 희구함과 동시에 양국 간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