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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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공식 서명] 자동차·가전·섬유 ‘웃고’ 농업·화학·기계류 ‘울고’

車·TV 수출 늘고 제약 무역역조 심화
돼지고기 등 수입 급증 축산농가 타격 클 듯
한국과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면서 관세 장벽이 사라진 세계 최대 시장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됐다.

산업계는 지난해 기준으로 대 EU 무역수지 흑자가 200억달러에 달하는 ‘수출 우위’를 유지하고 있어서 평균 4% 수준인 EU의 관세가 없어지면 전체 경제에 큰 이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 수출 품목인 자동차, 가전, 섬유 등은 뚜렷한 수출 확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소재를 포함한 화학, 기계류, 제약분야 등 EU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은 무역 역조가 심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자동차, 전기·전자, 섬유 수혜

한·EU FTA로 인해 향후 15년간 대(對)EU 수출은 연평균 25억2000만달러, 수입은 21억3000만달러 늘 것으로 평가됐다. 수출은 자동차(14억1000만달러), 전기전자(3억9000만달러), 섬유(2억2000만달러), 수입은 전기·전자(4억3000만달러), 기계(3억8000만달러), 정밀화학(2억9000만달러) 순으로 늘 전망이다.

관세 철폐에 따른 순수출 증가 등으로 제조업 생산은 향후 15년간 연평균 1조5000억원 수준의 증대 효과가 예상됐다. 업종별로는 자동차 산업의 생산증가 효과가 1조9000억원으로 가장 컸다.

전자제품도 수혜품목으로 꼽힌다. 현재 EU는 TV 및 TV용 브라운관 14%, VCR 8∼14%, 냉장고 1.9∼2.5%, 에어컨 2.2∼2.7%, 전자레인지 5% 등 우리나라 주요 가전에 약 2∼14%의 관세를 매기고 있다. 평균 관세율이 높지 않고, 국내 전자업계의 동유럽 현지 생산 증가로 가전 직수출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관세 철폐로 경쟁력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섬유도 전반적으로 ‘득’이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제품은 EU 생산자보다 중국이나 대만 등 EU의 주요 수입국과 경쟁관계에 있어 EU 시장에서 관세 폐지에 따른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화학, 일반기계류, 농업 타격

반면 화학업종(정밀화학+석유화학)은 관세 철폐로 적자폭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EU는 전 세계 화학산업 매출의 30%(2005년 기준)를 차지하고, 세계 30대 화학기업 가운데 바스프(BASF), 쉘(Shell), 바이에르(Bayer), 토탈(Total) 등 무려 13개를 보유한 ‘화학 제국’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밀화학 분야는 현행 EU 관세율이 평균 4.5%로 우리나라의 6.87%보다 낮아 관세를 동시에 없애면 우리 측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5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8차 아셈(아시아·유럽 정상회의) 폐막식 직후 열린 조정국 공동 기자회견에서 헤르만 판롬파위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합성수지·고무 등 석유화학 제품 역시 현재 품목에 따라 최고 6.5% 정도인 관세가 없어져도, EU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동 석유화학기업들과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하는 만큼 수혜가 비(非)에틸렌 계열 등 일부에 국한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대EU 교역의 적자 업종으로 꼽혀온 일반기계류도 FTA 체결 후 무역역조가 심화할 것이란 예측을 낳고 있다.

특히 농업은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다. 돼지고기와 닭고기의 수입이 큰 폭으로 늘고 쇠고기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은 농업 부문 생산 감소액이 연평균 1776억원이며 이 가운데 축산업의 생산액 감소가 연평균 1649억원으로 전체의 93%를 차지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김기환·이천종 기자 kk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