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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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장 도둑질도 모자라 살인까지… 中어선 ‘바다의 무법자’로

영해 침범 나포작전 중 해경 2명 사상
영해를 지키는 해양경찰의 위상에 금이 가고 있다. 우리 영해를 침범해 불법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의 선원들이 흉기를 휘두르며 찌를 만큼 만만한 상대로 여겨지고 있다. 해경의 인명 피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해경 홈페이지와 소셜네트워크에는 분노의 글이 넘쳐난다. “도를 넘은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과 폭력을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얼마나 많은 해경이 더 희생돼야 공권력을 강화할 것인가.” 솜방망이 단속을 한탄하는 글이다.

故 이청호 경장
◆3년 만에 또 희생된 해경 대원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3005함이 서해상에서 불법조업 중인 중국 어선 2척에 대한 나포 작전에 나선 것은 12일 오전 6시쯤이다. 3005함은 6시25분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 남서방 87㎞ 해역에서 중국어선 2척 중 루원위 15001호(66t급)를 정지시켰다. 해경 특공대원들은 이 어선에 옮겨 탄 뒤 수색을 했다.

중국어선 1척이 갑자기 루원위호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들이받았다. 해경 검거망에서 루원위호를 빼내려는 극단적인 공격 행위였다. 강한 충돌로 배가 흔들리자 중국 선원 9명은 갑자기 흉기를 휘두르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오전 6시59분 조타실에서 수색 중이던 이청호(41) 경장은 중국 선원이 휘두른 유리조각에 왼쪽 옆구리를 찔렸고, 이모(33) 순경도 찰과상을 입었다.

해경은 인근 해역의 502함에 긴급 타전, 현장에 출동할 것을 지시했다. 환자 이송을 위해 인천에서 헬기가 떴다. 해경 헬기는 오전 8시30분 3005함에서 해경 2명과 중국 선장 1명 등 부상자 3명을 싣고 오전 9시45분 인천 인하대병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 경장은 장기 파열로 오전 10시10분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12일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 해상에서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어선을 나포하다 선원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인천해경 특공대원 이청호 경장의 빈소가 마련된 인하대 병원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자원 약탈에 나선 중국어선들


중국 산둥반도에서 출어한 어선들은 성수기와 비성수기를 가리지 않고 우리 어장을 넘본다. 중국쪽 어장은 남획에 따라 황폐화했다고 한다. 자국 영해에서 고기가 잘 잡히지 않으니 중국어선은 밤과 새벽 시간대를 틈타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영해를 침범하고 있다. 이들은 남의 바다의 어족 자원을 보호할 이유가 없으니 치어까지 마구 잡아들인다. 자원 약탈에 다름 아니다.

해경 경비함은 하루 24시간 바다를 감시하지만 단속은 쉽지가 않다. 중국 선원은 단속하는 우리 해경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당연시한다. 무허가 또는 제한조건 위반으로 나포된 외국 어선에 대한 담보금의 법정 한도액도 7000만원에서 최근 1억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불법조업에 나선 중국어선들은 잡히면 이 돈을 내야 한다. 이를 내지 않기 위해 대한민국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해경은 지난달 16∼18일 서해 어청도 북서방 우리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경비정, 경비함, 헬기, 고속단정을 투입해 중국 어선 10여척을 나포하고, 흉기를 휘두르며 저항하는 중국 선원도 검거했다. 상왕등도에서 적발된 중국 선원들은 특공대원이 배에 오르려 하자 죽봉을 휘두르고, 배를 줄로 연결해 1시간 넘게 중국쪽으로 달아나다 헬기와 해상 특공대원의 협공에 투항했다.

◆허점투성이 해경 위기매뉴얼


해경은 지난 3월 불법조업 중국어선의 나포·압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막기 위해 ‘위기매뉴얼’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법조업 단속 과정에서 또 사상자가 발생해 매뉴얼에 허점을 드러냈다.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해경이 총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해경은 공포탄 외에는 실제로 총탄을 사용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처벌이 무른 것 역시 개선돼야 할 점이다. 2008년 전남 가거도 해상에서 박경조 경위가 중국선원의 둔기에 맞아 숨졌을 때 징역 7년과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을 뿐이다.

재원을 마련해 인력과 장비를 확충하는 것도 시급하지만 불법조업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외교적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찬준 기자, 인천=이돈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