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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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마늘분쟁 이후 ‘트라우마’…속수무책 당하기만

정부, 對中 저자세 외교 다시 도마올라
한국 외교는 중국에 대해 일종의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다.

2000년 중국산 마늘에 대해 한국이 고율의 관세를 적용하자 중국은 휴대전화 수입 잠정금지라는 보복 조치에 나섰고, 화들짝 놀란 한국은 두 손을 들고 만다. 한국 외교관들은 대중 외교의 어려움을 설명할 때 흔히 이 한·중 마늘 분쟁을 예로 든다. 이같이 중국을 잘못 건드렸다간 크게 낭패를 본다는 우려가 머릿속에 각인됐고, 이는 중국과 상대하기도 전에 한수 접고 들어가는 소극적 외교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12일 불법조업을 단속하던 우리 해경이 중국 선원에 살해당한 사건은 한국 대중 외교의 씁쓸한 현주소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최근 한·중 간에 갈등 요인이 발생했을 때 양국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중국이 국익이나 자국민 보호를 위해 ‘적반하장’식 태도와 위협적 어조로 압박을 가하는 반면, 한국은 정당한 주권을 분명하게 주장하지 못한 채 더 큰 외교적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데 급급하다는 인상을 준다.

지난 10월23일 전남 신안군 가거도 앞바다에서 불법조업하던 중국 어선 3척을 목포 해경이 나포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중국 정부는 이튿날 장위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한국측이 ‘문명적인 법 집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국 어민들이 EEZ(배타적경제수역)를 침범하고 흉기를 휘둘러 위법 행위를 한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해경 살해 사건을 놓고도 중국 외교부는 한국의 비난 여론이 들끓자 13일 오후에야 뒤늦게 유감 표명을 했다.

중국 내 탈북자 송환 문제도 늘 거론된다. 한국 정부는 중국 내 탈북자 문제에 대해 공개적인 외교활동을 통해 중국 정부에 북송 중단을 요구하면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조용한 외교’ 원칙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이 같은 외교 기조는 사실상 ‘직무유기’에 가깝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지난해 천안함 사건에서도 중국은 한국의 기대를 저버리고 전통적 혈맹인 북한을 편들었으나, 한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2008년 4월 서울에서 베이징 올림픽 횃불 봉송행사가 열렸을 때 중국 유학생들의 폭력행위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것도 오점이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강대국이기는 하지만 보편적 가치와 국제규범과 같은 원칙을 토대로 당당하게 대응해야 한·중 양국관계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미국 편중 외교에서 벗어나 대중 외교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박창억 기자